문재인 정부는 2018년 ‘기무사 계엄 문건’의 책임을 물어 기무사령부를 ‘해편’했다. 해편? ‘해체 후 재편성’이라는 뜻인데, 그전까진 정치권과 언론에서 사용된 적 없는 단어다. 국방부는 ‘해체 수준의 고강도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했다. 부대 이름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바뀌었고, 법령에 정치 관여를 금지하고 부당 직무 수행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정원을 줄이면서 90%에 달하던 현역 군인 부대원 비율을 70%로 줄인 뒤 빈자리는 민간인 군무원 출신으로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부대 건물에서 전두환·노태우를 포함한 역대 사령관들의 사진도 다 내렸고, 문 대통령이 임명한 남영신 사령관을 ‘1대 사령관’으로 명명했다. 기무사의 기능과 규모만 약간 조정한 ‘간판 갈아끼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별반 무소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해편으로 군 정보기관을 개혁한 점을 성과로 꼽았다.
그렇게 간판을 바꿔 살아남은 안보지원사는 ‘익명의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보수 언론을 붙들고 탄압의 희생양인 양 언론플레이를 벌였다. ‘세월호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 계엄 문건’, 이른바 3대 범죄에 연루된 요원들을 조직에서 방출해 육·해·공군으로 돌려보내고, 빈자리를 민간인 군무원으로 채워 인적 청산을 했다고 수선을 떨었지만, 그렇게 뽑은 군무원의 열 명 중 아홉은 전·현직 기무사 요원이었다. 그러다 윤석열이 대선에서 이기자마자 비밀 TF를 꾸려 조직 확대 강화 방안을 연구했다. 그 당시 국군통수권자가 문재인 대통령인데도 그랬다. 윤석열은 안보지원사의 이름을 ‘국군방첩사령부’로 바꾸고 기무사 때보다 더 큰 권한을 쥐여줬다. 역대 지휘관 사진을 걸어둔 자리엔 전두환·노태우 사진이 다시 걸렸다. 그에 걸맞게 방첩사는 12·3 비상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제복 입은 군을 상대로 청문회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단순가담자는 처벌해서는 안 되고, 군의 기강과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2018년 8월, 계엄 문건이 폭로됐을 때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겠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겠다만, 최근의 흐름엔 기시감이 든다.
8월에 발표한 중령 진급 예정자 선발 명단엔 노상원의 ‘수사2단’ 멤버 등 계엄 연루자들이 포함돼 있다. 안 장관은 지인에게 이 상황을 두고 ‘진급자 선발 과정에서 내란 사태 관련 여부는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진급 예정자는 1년 후에 계급장을 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사이 수사 등으로 문제가 드러나면 진급 취소하겠다’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진급 예정자가 기소되면 진급을 못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수사 결과 형사 범죄에 이르지 않았으면 내란에 가담했어도 진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이런 토대 위에선 장병들에게 ‘위헌, 위법한 명령은 따라선 안 된다’고 백날 교육해봐야 소용이 없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계엄 문건은 7년 지나 진짜 계엄령이 돼 돌아왔다. 다행히 실패했을 뿐이다. 실패를 교훈으로 만들어주는 우를 반복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