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는 극우 성향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가 어제(21일) 신임 총리에 당선됐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하고 일본 재무장을 주장하는 등 강경 보수 성향을 드러내 왔습니다. 한국과 과거사와 독도 영유권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오늘 점선면은 다카이치 총리가 어떤 인물인지, 앞으로 한·일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어제 열린 제104대 총리 지명 선거에서 중의원(하원) 465석 중 237표로 과반을 득표하고, 참의원(상원)에서도 결선 끝에 248석 중 125표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입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수반인 총리를 선출합니다. 중의원 선거 결과가 참의원보다 우선시되며, 관례상 중의원 다수당 당대표가 총리로 당선됩니다.
통상 일본은 오랜 집권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무난하게 총리에 올라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다카이치 총리의 당선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999년부터 손을 잡아 온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이 2024~2025년 중·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10일 공명당이 연정을 탈퇴하면서 다카이치 총리 당선도 불투명해졌죠. 하지만 지난 20일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연정을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중의원 과반(233석)에 가까운 231석(의장 포함 시 232석)을 확보, 다카이치 총리의 당선도 확실해졌습니다.
1961년생인 다카이치 총리는 1993년 제40대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나라현 전현구)되며 정치에 본격 입문했습니다. 1996년 자민당에 합류했고 지금은 10선 의원입니다. 2014년 아베 신조 전 총리 내각에서 한국의 행정안전부 장관 격인 총무상을 맡은 뒤 역대 최장기간 총무상(3차례)으로 재임했습니다. 경제산업부대신, 경제안보상 등도 지낸 중견 정치인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측근으로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입니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사과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를 두고 “과거의 전쟁을 현재의 총리가 마음대로 사과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비판했습니다. ‘위안부’를 두고는 “매춘을 강요했다는 역사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부정했고, 조선인 강제징용은 “같은 일본 국민으로서 징용된 것”이라며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일제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하며 일본군 재무장을 주장해 왔습니다. 2022년에는 한 극우 단체 행사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중국의 반발을 두고 “우리가 어정쩡하게 하니까 상대가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히틀러 선거전략>이라는 책에 추천사를 써 나치의 선거 전략을 호평한 전력도 있고요.
첫 여성 총리이지만 여성 인권 옹호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결혼 시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라가지 않고 다른 성을 쓰도록 하자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반대합니다. 동성혼과 여성 천황제에도 반대했고요.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나라현 명물인 사슴을 발로 걷어찬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등 외국인 혐오 정서에도 불을 지폈습니다.
경제 정책으로는 대규모 금융완화와 확장재정을 강조한 ‘아베노믹스’를 계승합니다. 외교적으로는 친미·반중 성향이며, 한국을 상대로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일본 정치를 주도해 온 자민당은 오랜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 등으로 힘을 잃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위기를 맞은 자민당은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강경 우클릭’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고, 그 결과가 다카이치 총리 당선입니다.
한·일관계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온건파였던 전임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와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협력관계를 다져 왔는데요. 우선 당장 한·일관계가 크게 격변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도 정부 수반이 된 이상 예전과 같은 강경한 태도를 대놓고 드러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올가을 야스쿠니 신사 제사 기간 참배를 보류한 것도 외교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한·일 양국이 어떻게든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통상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고, 미·중갈등도 전에 없이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과거사보다 경제·사회 협력을 앞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대일 외교에 나서는 만큼 대화가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를 중심으로 강경파가 득세하면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할 수 있습니다. 자민당의 옛 파트너 공명당은 온건 우파였지만, 새 파트너인 일본유신회는 강경 우파 정당입니다. 두 당은 연정 합의문에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평화헌법 9조’ 개정, 방위장비 수출규제 철폐 등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우파 지지층의 지지에 호응하기 위해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요.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2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와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상견례를 하게 됩니다. 현재 개최를 논의 중인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그도 본격적인 동아시아 정상외교 무대에 오르게 될 텐데요. 국제질서가 어느 때보다 엄중한 만큼, 일본도 지나친 과거 퇴행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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