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로 몰락한 이란 중산층···“개혁세력 실종, 소수 엘리트만 배 불려”[뉴스 깊이보기]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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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1. 오후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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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경제학 저널 논문
이란 정치개혁·경제성장 주도한 중산층
2012년 이후 서방 제재로 급감
중산층 예상치 28%↓, 빈부 격차·사회적 분노↑
이스라엘·미국 공습과 유엔 제재 복원으로 ‘악재’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에서 시민들이 상점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2년 이후 지속된 서방의 제재로 이란의 성장 동력이자 사회 개혁의 기반이었던 중산층이 빠르게 몰락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CNN은 19일(현지시간) 유럽 정치경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 ‘국제 제재가 이란 중산층 규모에 미치는 영향’을 인용해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이란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면서 그 여파로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사회적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하마드 레자 파르자네간 독일 마르부르크대 교수(중동경제학)와 나데르 하비비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경제학)가 공동 저자인 논문은 2012년 이후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미친 실제 피해 규모와 그 결과로 중산층이 얼마나 축소됐는지를 분석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이란의 중산층이 예상보다 28% 감소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합성 통제 기법을 사용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방 제재를 받지 않는 가상의 이란을 만든 다음, 이 모델을 실제 제재를 받은 이란과 비교했다. 연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서방 제재가 없었다면 이란 중산층 규모는 17% 증가했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서방 제재가 하위 중산층을 저소득층으로 밀어내고 상위 중산층의 해외 유출을 불러와 이란 중산층 감소 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된 <제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약 900만명이 중산층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추산됐다.

파르자네간 교수는 중산층 몰락으로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제재가 만든 비공식 시장을 통해 이익을 취하면서 동시에 제재로부터 보호받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수백만명의 이란인이 사회경제적 사다리를 잃고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제재는 부패와 결합해 중산층과 빈곤층의 몫을 빼앗아 권력층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1996년부터 2019년까지 이란 전체 인구에서 중산층 점유율 변화. 출처 유럽 정치경제학 저널 논문 ‘국제 제재가 이란 중산층 규모에 미치는 영향’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일치 체제가 시작된 후 서방의 간헐적 제재를 받아왔지만 2012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 전례 없는 수준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됐다. 이란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며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 등이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금융거래 금지 등 조치를 하면서 ‘경제 봉쇄’ 수준의 제재를 받게 됐다.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체결 이후 제재가 부분적으로 완화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후 2018년 미국이 JCPOA에서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제재를 부과하면서 이란의 경기 침체는 심화됐다.

논문에 따르면 이란 중산층은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인 1990년대부터 2012년까지 급격히 성장했지만 2012년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란의 중산층은 이란 정치·사회 개혁의 원동력이 됐으며, 녹색운동·여성운동 등 여러 민주화 시위의 주요 참여 계층을 차지했다. 이들은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현 대통령과 같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다.

중산층은 기술·서비스·제조 분야 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란의 아마존 격인 ‘디지칼라‘(Digikala), 우버와 비슷한 ‘스냅’(Snapp) 등 스타트업 기업이 중산층 기업가에 의해 창업됐다.

15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22회 경찰·보안 장비 박람회 행사장 밖을 지나는 시민들 뒤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가 담긴 포스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논문은 “이란 중산층 쇠퇴는 제재의 외부 압력과 이란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복지를 희생하면서까지 전략적이고 이념적인 외교 정책 목표를 우선시한 내부적 선택 모두 포함된 복잡한 역학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제재가 대상 국가의 사회구조에 장기적 안정과 발전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파괴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파르자네간 교수는 “서방의 제재가 이란 현대 사회 구조의 핵심을 공격했다”며 “정치적 주도권이 중산층의 ‘권리와 개혁 요구’에서 노동계층의 ‘생존과 빵에 대한 요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층의 시위가 “중요한 사회적 에너지”라면서도 “조직이 분산돼 있고 단기적 경제 불만에 초점을 맞춰 국가 탄압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또 빈곤층이 늘면서 정부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지속 불가능한 함정”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 이후 이란의 경제 상황은 악화했다.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이란의 지난달 말 실업률은 7.4%이며,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실업률을 9.2%로 예상하고 있다. IMF 10월 통계에 따르면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으며, 연간 물가상승률은 42.4%에 달한다. 테헤란의 교사 엘함은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진다. 빵이든 닭고기든 모든 게 비싸졌다”며 “그런데 부자들은 고급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 간다”고 CNN에 말했다.

지난달 유엔은 이란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10년 만에 다시 복원한 상황이다. 복원된 제재에는 핵 프로그램 및 탄도미사일 관련 물자의 대이란 수출 금지, 상업활동과 투자 금지, 제재 대상인 개인과 단체에 대한 자산동결과 여행 금지, 이란인 소유·계약 선박에 대한 서비스 제공 금지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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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814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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