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통역기 든 경찰, 외국인과 소통 ‘척척’
100만원 들여 민원실 등 3곳 설치
144개 언어 지원에 오프라인 가능
언어 때문에 억울한 일 줄어들 듯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된 우즈베키스탄 출신 피의자 A씨가 지난 11일 수사1과 유치관리팀 조민경 경장을 불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A씨는 한국어를 못했다. 조 경장은 우즈베크어를 전혀 몰랐다. 조 경장은 휴대전화처럼 생긴 기계를 꺼내 들었다. 언어 설정을 우즈베크어로 하고 A씨 쪽으로 내밀었다. 그제야 소통이 됐다. A씨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고 물었다. 조 경장은 이 기계에 대고 “48시간까지 있을 수 있고, 구속이 필요할 경우 판사를 만난 뒤 최장 10일까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우즈베크어로 번역돼 전달됐다.
조 경장이 사용한 기계는 휴대용 인공지능(AI) 통역기였다. 마포서는 지난 2일 외국인 피의자, 피해자, 민원인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위해 서울 시내 경찰서 중 처음으로 AI 통역기를 배치했다.
마포서 관할 구역인 홍대입구역 주변엔 외국인이 한국인만큼 많이 오간다. 그러니 외국인이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도 많다. 15명 정원인 유치장에 외국인이 10명 입감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사연이 많지만 외국인은 하소연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을 조사해야 하는 경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포서 청문감사인권관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책을 연구했다. 김준오 경위(38)는 “2년 넘게 근무하면서 외국인이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며 “외국인이란 이유로 자신의 권리 주장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포서는 예산 100만원을 들여 지난 2일 통역기를 경찰서 현관·민원실·유치장 등 총 3곳에 설치했다. 총 144개 언어를 지원하고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쓸 수 있다.
통역기를 가장 반긴 곳은 유치장이었다. 규정에 따라 유치장 근무자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어 휴대전화에 깔린 통번역 애플리케이션도 무용지물이었다. 전문 통역인은 수사부서에서 쓰기에도 예산이 부족했다.
조 경장은 “가장 자주 쓰는 중국어를 조금 배워 인권침해 관련 안내를 할 수는 있게 됐지만 러시아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을 다 배우기는 어려웠다”며 “3개월쯤 전 몽골 국적 외국인이 뺑소니 등 혐의로 입감됐는데 영어로 기본적인 소통도 어려워서 가슴을 치고 우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작 통역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통역기가 외국인 인권 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병이 있어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 심야에 갑자기 건강 문제가 생긴 경우 등에도 손쉽게 소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경위는 “외국인도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언어 때문에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는 사각지대가 있었다”며 “전국 경찰 곳곳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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