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집에 방문해 제품을 설치하다가 감금당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문을 연 끝에 나올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고객이 밀쳐 전치 3주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설치수리 노동자 A씨)
“고객의 아들이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가해자는 핸드폰을 빼앗아 던저버렸고, 강한 힘으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베란다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며 도움을 요청했고, 간신히 맨발로 탈출해 계단으로 뛰어내려왔습니다.” (방문점검원 B씨)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일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지만, 사실상 회사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다.
김주태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부위원장은 A씨와 B씨 같은 가정방문 노동자들이 겪은 피해 사례를 전했다. 그는 “특고 노동자라는 이유로 회사는 안전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와 사고 발생 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 고객을 위한 조치가 모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방문점검원 75%가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성폭력에 노출된 고객의 집에 다시 방문하거나 대면한 경우도 63%에 달했다. 김 부위원장은 “회사가 문제 고객에 대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회사가 노동자 보호조치를 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고용노동부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미흡하다고 노동계는 지적하고 있다.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안전보건 관련 법령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일부 업종에서만 특례 방식으로 적용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고 노동자에 대해서도 차별없는 건강권을 보장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지부장은 “배달노동자는 대한민국 산재 1위 업종”이라며 “2022년~2024년 산재사망자 수만 121명이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지금껏 단 한번도 재해조사나 중대재해로 인한 처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 조사 결과, 낮은 운임과 배달업체의 ‘시간제한 미션’ 같은 프로모션이 라이더를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됐다. 구 지부장은 쿠팡과 배달의민족의 보수·프로모션·알고리즘이 사고에 미친 영향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에게 최저보수제를 적용하고, 과도한 프로모션을 제한하며, 배달종사자 안전회의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택배현장의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과 쿠팡의 장시간 과로노동에 대한 공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쿠팡이 만든 장시간 과로노동 시스템이 택배현장을 교란하고 있으며, ‘주 7일 배송’ ‘365배송’ 등 쿠팡발 배송 속도 경쟁이 불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는 심야배송을 제한하고 다회전 배송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 법정휴일 의무휴업제 도입, 연간 12일 이상 휴가 보장, 휴일·야간근무 추가 수수료 지급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승규 사무금융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사고조사 에이전트들은 ‘교통사고 조사원’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회사의 일방적인 요구와 실적 압박을 법적 보호 없이 그대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강도의 노동을 감내하고 있다”며 “많은 출동서비스 노동자들이 도로 위 차량사고로 목숨을 빼앗겼다”고 했다. 노조 조사 결과 교통사고 조사원 77.3%가 업무 중 1회 이상 사고를 당했고, 평균 6.7회의 사고 경험이 있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특고·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안법을 전면 적용하고, 작업 중지권을 보장하며, 원청의 책임 의무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알고리즘으로 인한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산재보험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