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라도 해라” 청년 탓···42만명 ‘쉬었음’에 이유 있다[점선면]

문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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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있는 청년 대부분 ‘취업 경험 있음’
좁아진 고용 문에 “지금 퇴사하면 안돼”
정부·기업 나서 노동환경 개선 노력해야
일러스트 | NEWS IMAGE


20대 ‘쉬었음’ 인구가 42만1000명으로 7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쉬었음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지난주에 주로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비경제활동인구(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가 답하는 12가지 선택지 중 하나인데요. 일각에서는 일자리가 많은데도 청년층이 ‘게을러서’ ‘노력을 하지 않아서’ ‘의지가 부족해서’ 쉬고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점선면이 정리해봤습니다.

우선 ‘쉬었음 청년’ 대부분은 취업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취업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25~34세)은 약 40만명에 육박하는 반면 취업경험이 없는 쉬었음 청년은 5만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증가한 쉬었음 청년 중 71.8%는 비자발적 사유로 쉬게 됐습니다. 쉬었음 청년들을 뭉뚱그려 ‘노력도 안 해보고 쉰다’고 매도할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청년들이 쉬었음을 택하는 가장 주된 사유입니다. 눈높이가 높아서 그런 걸까요? 현재 청년 채용은 15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역대급으로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은 숙박·음식점업 분야도 코로나19 시기만큼 취업자 수가 줄었습니다. 다른 연령대와 달리 청년층 ‘고용의 질’은 코로나19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해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겁니다.

내수 부진으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인 여파인데요. 온라인상 이직 고민 글에는 “지금은 퇴직하면 안 된다”는 반응이 쏟아집니다. 실제로 지난 6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채용은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제조업 중심인 지방은 더 심각하고요.

신입 구직자들의 상황도 열악합니다. 최근 들어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거든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발표한 ‘상반기 채용시장 특징과 시사점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8곳 이상이 경력 직원만 뽑겠다고 공고를 올렸습니다. 인공지능(AI)가 보편화되면 신입 채용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구직 실패가 반복될수록 청년들의 무기력감은 커집니다. 약 50만명으로 추산되는 ‘고립은둔청년’들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면서 끝내 사회와 단절을 택합니다. 고립된 삶을 살아온 이윤미씨(가명·22)는 “정말 일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안 돼요. 조금 쉬운 일부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단기적 해법은 기업이 채용 규모를 늘리는 것인데요. 기업들은 경기 활성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을 답니다. 정부로서는 내수 진작, 청년 채용 기업 인센티브 확대 등 마중물 역할을 할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펼 필요가 있습니다. 내수가 어렵다면 해외에서 일할 인재 채용을 독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노동환경 개선이 요구됩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2024년 상반기 청년층 대상 채용동향조사’에서 청년 10명 중 9명은 ‘임금·복지가 좋다면 중소기업 취업도 상관없다’고 답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도 중요한 구직 기준으로 꼽혔고요.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청년에게 일자리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기 전에 노동환경부터 대폭 개선해야 한다”며 “최소한 일 하다 목숨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고용안전망 구축, AI 인재 양성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구직급여와 국민취업지원제도 확대 등 고용안전망 구축에 1조6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청년들을 AI 전사로 육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줄어든 공공부문, 지역 청년 일자리 등의 복원도 필요해보입니다.

지금 쉬는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위로와 격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작가는 칼럼에서 극한 경쟁 속 청년들의 멈춤을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행동’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했는데요.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같습니다. 도망치고 숨더라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하다”는 겁니다. 아마 쉬는 동안 가장 불안한 사람은 청년, 그 자신일 텐데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숨 고를 시간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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