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값 잡겠다는 정부⋯모범이라도 보여야

이수현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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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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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을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받는 겁니다.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면 그간 소득을 쌓은 후 집을 사면 됩니다. 어차피 기회는 돌아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1차관이 던진 말은 작지 않은 반향을 낳았다. 정부가 지난 15일 서울 전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는 초강수를 둔 후 논란이 지속되자 이상경 차관은 유튜브 방송에 나와 무주택 국민을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벌써 세번째 내놓은 초강경 대책으로 시장은 말 그대로 혼돈에 빠져있는 상태에서였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어느곳에서든 주택을 사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고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LTV 등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서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재건축과 재개발 현장은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없어 분담금을 홀로 감당해야 하다 보니, 정비사업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질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니 집값이 오르지 않은 지역 주민들은 '강남에서 집값 올랐는데 우리까지 피해를 본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정부의 입장도 이해할 만 하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 상승폭이 매주 확대되면서 외곽지역까지 들썩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일부 지역만 규제지역으로 지정했을 경우 상승세가 인근 지역으로 번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계심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잇따라 강경 규제책을 쏟아내다 보니, 실수요자들로서는 자금 마련이 어려워지고 거래과정에 복잡해지진 것은 물론 심리 위축으로 인한 매물 축소 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닥쳤다. 집값이 미동도 하지 않은 지역의 국민으로서는 하루아침에 규제지역으로 묶여 잔뜩 불편해진 부분에 대해 정부를 대표하는 이들이 양해를 구하는 태도라도 보일 것을 내심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 고위 관계자의 태도는 오히려 서민들의 분노를 지폈다. 나중에 돈을 모아 집을 사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무책임한 언사에 여간 자극을 받은게 아닌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책사'로 불리는 이의 입에서 집 없는 서민을 약올리듯, 지속해서 오르기만 하는 집값을 두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며 입 벌리고 앉아있으라'는 식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 실망 내지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차관은 '갭투자' 방식으로 33억원대 아파트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위선'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다.

사실 이번 대책이 나온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 고위 당직자들의 주택 목록이 빠르게 확산했다. 일부는 갭투자로 집을 샀다는 의혹이 일었고 다른 일부는 다주택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누군가는 서초 아파트 다주택자라는 지적을 받자 집을 파는 대신 자녀에게 증여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일반적인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집값 안정화라는 목적을 위해 타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정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는 되고 너희는 안 된다'는 '내로남불' 식 태도는 더이상 용납받지 못 한다. 더욱이 태연하게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강구하고 시행하려면 위정자들부터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국민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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