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베이직·무탠다드 뷰티 등 불황 속 업종 불문 확산△시장 조사 △원가 책정 △마진율 설정 △판매가 확정. 유통업체가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때 거치는 통상적인 과정이다. 원가에 생산비, 인건비, 물류비 등을 고려한 후 적정 마진을 남겨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윤 추구라는 첫 번째 가치 속 당연한 공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소비자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저렴한 가격을 정해놓고, 이를 넘지 않도록 원가와 마진율을 맞추는 '역설계' 상품이 늘어나면서다. 패션·뷰티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역설계 상품들이 잇따라 탄생했는데, 불황 속 지갑 사정이 얇아진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SPA 브랜드 NC베이직 지난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9% 늘었다. 성장 요인은 상품 가격이 대부분 3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이 꼽힌다. 비결은 판매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원가 구조를 역으로 만드는 구조다. 여기에 판매가를 낮추기 위해 비수기 생산, 해외 소싱, 해외 자가 공장생산 등 중간수수료 절감이 더해진다.
대표 상품은 반팔 티셔츠 3개 묶음이다. 묶음 가격은 9900원으로 1개에 3300원인 셈이다. 해당 제품은 올해 1월~10월 기준 전년 대비 판매량이 226% 성장했다. 같은 기간 입고액은 약 5배 늘었다.
NC베이직은 이처럼 가격을 상품에 따라 △9900원 △1만2900원 △1만9900원 △2만9900원 등으로 정해놓고, 기획 단계에 돌입한다. 오는 20일에도 가격 역설계 방식(1만2900원)으로 만든 '겨울용 여성 베이직 웜 브라탑'을 선보인다. 윔케어 소재를 적용해 보온성과 착용감을 동시에 강화하면서도 가격은 시중가 대비 절반가량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뷰티 상품에서도 가격 역설계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는 초저가 스킨케어 라인을 새롭게 선보이며 가성비 뷰티 시장 공략에 나선 가운데, 출시와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클렌징폼, 크림, 토너, 세럼 등 총 8종의 기초 제품으로 구성됐는데, 인기 요인은 단연 가격이다.
역시 판매가를 3900원부터 최대 5900원으로 정해놓고, 상품을 제작했다. 대표 상품인 세럼은 글로벌 ODM(연구·개발·생산) 기업 코스맥스와 협업해 개발하며 품질도 입증했다. 일부 상품은 3일 만에 조기 완판되며, 현재 3차 리오더를 진행 중이다.
기업들이 이런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소비 패턴과 맞물려 있다. 높은 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이 가성비, 초저가 상품에 열광하고 있어서다. 이윤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박리다매식으로 판매량을 늘리는 대응 전략이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의 가격 역설계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런 방식은 5000원 이하 균일가 상품만 취급하는 다이소가 유일무이했다. 최근에는 생활용품을 넘어 화장품·건강기능식품까지 역설계를 적용해 상품군을 확장하며 관련 시장을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별로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을 넘지 않는 게 흥행의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유통기업들이 가장 강력한 가격 정책인 역설계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