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광 칼럼] 가상화폐 거래소의 딜레마, 폭락 속에 드러난 거래소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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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상화폐 시장의 대규모 폭락은 수많은 레버리지 투자자들에게 청산이라는 참사를 안겼다. 그러나 단순 시장 변동성 이상이 문제다. 바이낸스 등 주요 거래소에서 연이어 발생한 접속 장애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위기를 관리할 기회 자체를 박탈했다. 당국에 신고된 접속 장애 피해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거래소의 '사후 보상' 발표는 청산 기회도 박탈 당한 억울한 투자자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막을 수 있었던 피해인가? '기술적 결함'과 '정보의 불투명성'

폭락장에서 접속 지연 또는 장애는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레버리지 포지션을 갖고 있다면 단 몇 분, 몇 초의 지체도 증거금을 추가하거나 포지션을 정리할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쟁점은 거래소의 기술적 안정성이 충분했는가이다.

시장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일 때 거래소의 시스템 큰 트래픽이 발생하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점은 거래소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한다. 대부분 거래소는 AWS와 같은 클라우드를 사용하지만 시스템의 스케일업과 트래픽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클라우드만 사용한다고 트래픽 폭등 상황에서 장애를 해결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청산 로직의 불투명성이다. 대부분의 거래소는 청산이 발생하는 정확한 조건과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조기 청산' 또는 '불공정 청산'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특히 유동성이 낮은 알트코인에서 거래소가 투자자의 반대 포지션을 취해 이익을 챙긴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시장 규모가 작은 알트코인의 경우, 거래소의 대량 매도 주문 하나가 가격을 급락시켜 연쇄 청산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는 투자자의 손실을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할 유인이 생긴다.

'도박판'을 조장하는 거래소의 공격적 마케팅

'몰라도 따라만 하면 끝, 5분만에 정복하는 선물거래'. 이러한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이는 거래소가 펼치는 공격적인 레버리지·선물 마케팅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은 레버리지로 인해 수십 배의 수익을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할 수 있는 '전액 손실' 위험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거래소들의 이러한 행보는 '상장 전쟁' 과 맞닿아 있다. 유튜버들이 쉽게 돈을 번다는 코인 선물 강의는 달콤하다. 이 모든 것은 투자자로 하여금 고위험 상품을 덜 위험하게 인식하게 만들고, 결국 시장을 거대한 '도박판'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규제의 책임. 금감원이 나서야 할 때

해외 거래소를 상대로 한 규제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국민의 자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금감원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칭)을 통해 거래소에 대한 허가제 도입 등 본격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를 최종 승인한 것은 '해외 거래소도 한국의 규제 프레임워크 안으로 끌어들이겠다' 는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이제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

청산 메커니즘 공개 의무화: 거래소가 청산 가격 산정 방식, 마진 콜 정책, 가격 정보 출처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위험 경고 의무 강화: 레버리지 상품에 대해 '투자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반드시 명시하고, 그 위험도를 명확히 인지시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상장 심사 기준 표준화: 무분별한 알트코인 상장을 막기 위해 상장 심사 과정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투자자가 지켜야 할 생존 법칙

이 혼란한 시장에서 투자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명확하다. '알트코인 레버리지는 지옥행 특급열차'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는 반드시 유동성이 높은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주요 코인으로 한정하라. 알트코인의 레버리지는 그 자체로 극단적인 위험을 수반하며 단 몇분만에 원금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코인 선물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

'거래소를 먼저 검증하라'. 상장 코인 수나 마케팅 이벤트보다 보안,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운영 투명성을 중시하는 거래소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익혀라'. 레버리지 거래에 앞서 해당 거래소의 청산 정책, 수수료, 이상 상황 시 대처 방안 등을 꼼꼼히 확인하라.

결론적으로, 가상화폐 거래소의 딜레마는 성장과 책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시장이 성장했지만 그에 따르는 투명성과 신뢰는 따라오지 못했다. 이 '신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규제 당국의 단호한 개입, 거래소의 적극적인 책임 회복, 그리고 투자자의 현명한 자기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신뢰의 트라이앵글이 무너진다면, 가상자산 시장은 진정한 금융 시장으로 성장하기보다 끝없는 논란의 도박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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