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동시에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것은 '가격'보다 '심리'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수도권 불안 조짐을 조기에 진화하고, 금리 인하 기조 속 되살아나는 투자 기대를 누그러뜨리려는 전략이다.
15일 정부는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서울 25개 자치구 전역과 과천·성남·광명·수원·안양·용인·의왕·하남 등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담겼다.
핵심은 대출 억제다. 기존 6억원이었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단계별로 차등화했다. 시가 15억~25억원은 4억원으로, 25억원 초과는 2억원으로 낮췄다. 15억원 이하는 기존 6억원을 유지하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되는 스트레스 금리 하한을 1.5%에서 3%로 상향했다. 금리 인하에도 대출 여력이 늘지 않도록 선제 차단한 것이다.
금융위 분석에 따르면 소득 5000만원 차주는 스트레스 금리 인상 시 대출 한도가 평균 10% 이상 줄고, 연소득 1억원 차주도 변동금리형 기준 최대 8600만원 감소한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 이자 상환분도 DSR에 포함돼 차주의 상환 여력이 최대 14.8%포인트 줄어든다. 사실상 가계의 '레버리지 한계선'을 다시 그린 셈이다.
정부는 주담대 위험가중치 상향 시점을 내년 4월에서 1월로 앞당기고 담보인정비율(LTV)을 70%에서 40%로 낮췄다. 상가·오피스텔 등 비주택담보대출에도 동일한 규제가 적용된다. 규제지역 신규 지정에 따라 전세대출과 신용대출을 통한 주택구입 제한도 동시에 강화된다.
이번 대책에는 세제 개편의 구체적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필요할 경우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예고를 남겼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유도, 응능부담 원칙, 국민 수용성 등을 감안해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개편의 구체적 방향과 시기, 순서는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과세형평을 감안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제 개편은 부동산 대책의 마지막 카드로 꼽혀 왔다. 섣부르게 증세 카드를 꺼냈다가 집값 안정보다는 세 부담 증가라는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했으며, 구 부총리도 국정감사에서 “세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시장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세제 운영 방향에 관한 연구용역을 올해 안에 발주하고 관계부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보유세·거래세 조정, 특정 지역 수요쏠림 완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처럼 금융과 세제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시장 관리의 초점은 '심리 진정'에 맞춰졌다. 서울 전역을 묶은 것도 풍선효과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의도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장 불안 확산 차단이 최우선 목표이며 필요하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직속 부동산 불법행위 감독기구 신설도 병행된다. 기존 부처별로 나뉘어 있던 조사·수사를 총괄·통합하는 조직으로 전세사기나 시세조작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직접 조사·수사할 권한을 갖는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감독기구 설립 전까지 범정부 추진단을 구성해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지난 9월 발표한 '9.7 공급대책'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요 억제, 중기적으로는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한다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공급대책 이행점검 TF'를 가동해 수도권 신규택지 3만 호, 서울 노후 임대주택 2만3000호 공급 계획을 연내 확정할 계획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장 불안을 조기에 차단하고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자본이 투자되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