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귤북지(南橘北枳), 남쪽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에 사절로 파견간 제나라 재상 안영으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초나라 영왕이 도둑질 하다 잡힌 제나라 사람을 가리켜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영은 이렇게 답한다. “회남의 귤을 회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지요. 바로 물과 토양의 차이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는 걸 보니, 이 나라 풍토가 좋지 않은가 봅니다.”
사람이 그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된다는 얘기다. 비단, 사람만 그러할까?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환경이 달라지면 ‘선한 제도’도 ‘악한 제도’가 된다. ‘코로나19’라는 회수를 건넌 유통산업발전법이 그러하다.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는데,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소비의 패턴이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확산한 비대면 쇼핑은 코로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에도 이어져 소비 패턴을 바꿔놓았고, 유통의 무게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실히 이동했다.
문제는 강(코로나)을 건너기 전의 풍토에서 심은 귤(유통산업발전법)이다. 코로나를 거치며 유통산업발전법은 본 취지를 잃고 떫은 ‘탱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진 건 13년 전인 2012년. 전통시장과 골목시장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 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매달 2회 의무휴업을 하고 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없고, 이 시간 동안 온라인 배송도 해선 안 된다.
소비패턴과 유통의 무게중심이 확 바뀐 현재의 유통환경에서 이 규제는 실효성을 잃고, 국민 편익에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떫은 ‘탱자’와 같은 처지다. 가장 논란이 큰 건 실효성이다. 2022년 농촌진흥청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수도권 1500가구의 일평균 전통시장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원이었는데, 이는 대형마트 영업일에 집계된 전통시장 식료품 구매액인 630만원보다도 적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온라인몰 식료품 구매액은 어땠을까? 평균 8770만원으로 의무휴업일이 아닌 일요일보다 130만원 많았다. 평소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옆집 경숙이 엄마가 대형마트 휴업일엔 쿠팡이나 컬리 등 이커머스 앱에 접속해 주문했거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는 얘기다.
특히 2015년 1370만원이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기준 전통시장 식료품 구매액은 코로나가 확산하던 2022년 610만원으로 55%나 줄었다. 반면 온라인몰 구매액은 같은 기간 180만원에서 8770만원으로 48.7배나 커졌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함이라는 본 취지와 맞지 않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옛 논리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오히려 이 규제가 전통시장을 포함한 오프라인 시장의 동반 침체를 가속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현재 이 규제와 관련해, 소비자 편익과 유통 산업 간 형평성을 고려해 영업시간 제한을 시대에 맞게 전면 재검토해달라는 건의가 대한상의 이름으로 정부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제대로 검토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최근 정치권에선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 법제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여당 일각에선 휴업일을 일요일로 못 박자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귤은 버리거나, 달라진 환경에 맞게 접목(접붙이기)을 한다. 효과가 미미한 정책 또한 이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이전 것을 어거지로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히 뜯어고치거나 버리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편익을 높일 수 있고, 무엇보다 대형마트·온라인·전통시장이 함께 성장해 결과적으로 ‘유통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 ‘유통산업발전법’, 이름값 좀 하자.
new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