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 반대하는 건 모순”

김채운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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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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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 발제② |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탄핵 결정으로 본 민주주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탄핵 결정으로 본 민주주의’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에 관해 대법원과 여당 양쪽에 쓴소리를 남겼다. 대법원에는 “대법관을 늘리란 요구를 대법관이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고 했고, 여당에는 “목소리 큰 당원 요구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한겨레신문 주최)에 ‘탄핵결정으로 본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두번째 기조강연자로 나서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사법 개혁 방안에 대해 저는 총론에 동의한다. 그러나 각론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먼저 대법원의 사실심화 경향을 지적했다. 그는 “대법관 1인이 1년 동안 처리하는 사건이 3천건이 넘는다. 선진국 중에서 최고법원 법관이 1년에 3천건 이상 처리하는 나라는 제가 알기로 거의 없다”며 “그런데 왜 대법관을 늘리란 요구를 대법관이 반대하느냐. 이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짚으며 그는 지난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내린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들었다. 문 전 권한대행은 “만약 그 판결이 사실의 문제라면, 대법원은 그 사건을 다뤄선 안 된다. 만일 법리의 문제라면, 앞으로도 같은 입장을 계속 취하겠다면, 대법원은 대법관 수 증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대법원이 ‘사실’을 계속 건드릴 건지, 손을 뗄 건지 그 문제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재판제도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심과 2심(항소심)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실심’, 3심인 대법원은 법률 적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법률심’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최근 일부 사건에서 사실관계까지 판단하는 ‘사실심화’ 경향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문 전 권한대행은 국회와 여당에도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사법 개혁 공론화 작업엔 당연히 법원도 참여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의료 개혁 방안을 만드는데 의사를 참여시키지 않아 어떤 결과가 왔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법원은 개혁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개혁의 실행 주체”라며, “공론장이 복원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기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공론장 없이 입법 절차가 이뤄지고, 그 절차에서 다수결만을 강조할 때 우리는 불행했다”며, “중요한 과제일수록 ‘결단’할 게 아니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당이 목소리 큰 당원의 요구에 휘둘려선 안 된다. 왜냐면 (정책의) 각론을 만들고 실행하는 건 정당의 몫이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특히 그는 “사람이 저지른 실수를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면, 결국 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된다”며 “휴먼 에러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시스템은 본래의 목적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휴먼 에러를 해결하겠다며 성급히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건 위험하다”며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없는지 국회가 신중히 숙고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문 전 권한대행은 사법제도 개혁과 관련해 “심리불속행 판결 제도를 상고심사제로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심리 불속행 판결은 이유가 한 줄짜리에 불과하다”며 “대법원 판결문이 이렇게 간략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고심절차를 ‘상고 심사제’로 바꿔 상고 이유가 없는 사건은 ‘상고 불수리 결정’으로 끝내고, 이유가 있는 사건만 본안으로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들이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조기에 선고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남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이 다룰 필요가 있는 사건만을 선별해 본심리에 회부하도록 한 ‘상고심사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결정은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되지만, 대법원 판결은 국민 앞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에도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에서는 개인이 변호사 없이 심판을 청구할 수 없지만, 대법원은 가능하다”며 “이는 오히려 법률심인 대법원의 복잡한 사건 구조를 생각하면 불합리한 예외”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사건은 난도가 높고 공익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호사강제주의란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주로 헌법재판소 심판절차, 형사소송법상 일부 중대사건, 국민참여재판 등에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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