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끝나”…자충수 된 검찰의 ‘압박 수사’ [뉴스AS]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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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후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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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주가조작 1심 판결문 보니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를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지양되었으면 한다.”

21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 313호 법정.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을 한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등에 대한 1심 선고 막바지에,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 방식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례적인 풍경이다. 이날 재판부의 ‘일갈’에 이르기까지, 검찰 수사 과정을 1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되짚었다. 김 센터장과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 총괄 대표 등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의 핵심은 ‘공모’ 행위와 ‘주가 조작’이라는 범행 목적을 드러내는 데 있었다. 2023년 2월18~19일, 김센터장 지시로 배재현 전 총괄 대표 등이 사모펀드인 원아시아파트너스 지창배 대표와 공모해 주가를 높게 고정할 목적으로 에스엠 주식을 사들였다는 의혹을 파헤쳐야 했다. 당시 카카오 쪽의 에스엠 인수 경쟁사였던 하이브는 공개매수가로 12만원을 제시했는데, 이를 웃도는 주가를 만들어 인수를 좌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 에스엠 주가는 12만원을 넘겼고, 하이브의 에스엠 인수는 무산됐다. 경영권은 카카오 쪽이 확보했다.

이복현 전 원장이 이끄는 금융감독원은 김 센터장 등 카카오 주요 임원들을 상대로 의혹을 밝히기 위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뒤 2023년 11월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넘겼다. 그룹 전반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간 검찰은 지난해 7월 들어 칼끝을 본격적으로 김센터장에게 겨눴다. 김 센터장에 대한 첫 소환조사(7월9일), 구속영장 청구(7월17일), 구속(7월23일), 기소(8월7일)가 한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이뤄졌다. 몰아치듯 이어진 ‘압박 수사’는 결국, 법원이 1심 판결에서 검찰의 구형을 뒤집고 피고인 대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게 된 자충수가 됐다.

“유일한 증거 증언…상식에 반해”
1심 판결문을 보면, 김 센터장→배재현 전 총괄대표→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로 이어지는 지시·공모 관계와 관련해 검찰은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제시했다. 법원은 이 진술을 ‘허위’라고 보고 배척했다. 판결문 상당 부분도 이를 검토하는 데 썼다.

이 전 부문장은 검찰과 법원에서 “(2023년 2월10일)지 대표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휴대폰의 스피커폰 기능을 켜서 배재현 전 총괄대표와 통화할 수 있게 해줬다”며, 자신이 들은 통화 내용을 증언했다. 배 전 총괄대표가 지 대표에게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주겠다”, “카카오엔터의 굿즈 사업권을 줄 수 있다”며 에스엠 주식 매수에 동참할 것을 회유하는 내용이다. “김 센터장을 통해 에스엠 주식 매수를 요청했는데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며 두 사람의 공모가 김 센터장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도 진술했다.

법원은 애초 스피커폰으로 통화가 이뤄진 것부터 “지창배 대표의 업무 방식, 대화 내용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이고 상식에 반한다”고 짚었다. 불법 소지가 있는 데다 자칫 손실을 볼 수 있는 1천억원 규모의 매수를 결정하면서 계약서 작성이나 합의 조건 논의 등 “후속 조치가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도 전혀 없어”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애초 배 전 총괄대표에게 굿즈 사업권을 넘길 권한이 없는 점 △이 전 본부장의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이 엇갈린 점도 1심 법원이 증언을 배척한 이유다.

재판부는 이날 통화가 김 센터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언에 대해서도 “배재현 전 총괄과 김 센터장 사이에 (통화 이전) 공개매수 저지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는지”에 관한 이 전 본부장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고 일축했다.

“허위진술할 동기…수사 압박”
법원은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을 허위로 판단하며, 허위 진술을 할 동기를 검찰의 ‘압박 수사’에서 찾았다. 1심 판결문은 이 전 부문장에 대해 “금융감독원과 검찰에서 수차례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하였다”고 짚었다. 이 전 부문장은 에스엠 주가 조작 사건 외에도 자신과 배우자가 연루된 카카오엔터의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 고가인수 혐의로도 수사 받는 상황이었다. “너무 스트레스받네요. 뭐 완전히 다 일상이 무너져 버리니까.” 판결문에 담긴 2023년 11월, 이 전 부문장의 발언이다.

조여오는 수사에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 전 부문장이 “수사의 종국적인 목표지점이 김 센터장임을 인식하고, 검찰에서 그에 부합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 “수사가 종결되거나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게 1심 법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의 6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던 이 전 부문장은 두 번째 검찰 조사(2023년 11월29일)부터 검찰 입맛에 맞는 진술로 돌아섰다고 한다. 이 조사 닷새 전, 지창배 대표와 대화에서 이 전 부문장은 “그들(검찰)은 김센터장이 알았냐, 몰랐냐만 원하는 것 같다”며 “원아시아파트너스의 매수행위에 대해 김 센터장이 알고 있었다. 그게 정답이다. 그러면 끝난다”고 말했다. 이 전 부문장은 이후 검찰에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신청했다. 검찰은 에스엠 시세조종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부문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공모 사실이 인정되지 않고,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카카오 및 카카오엔터가 특별관계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하며 김센터장을 비롯해 피고인들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대해 “진술 압박 부분 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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