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영국·프랑스·독일 등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이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돈바스(우크라이나 도네츠크·루한스크주) 포기’를 압박하자 유럽이 한목소리로 반발하는 모양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각국 정상은 21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내어 “우리는 전투가 즉시 중단돼야 하며, 현재 접촉선(전선)을 평화 협상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의 시간 끌기 전술은 평화에 진지한 당사국이 우크라이나뿐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며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평화를 이룰 준비가 될 때까지 러시아의 경제와 방위산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7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 뒤 트루스소셜에 “살상을 멈추고 협정을 맺어야 할 때”라며 “그들(러시아·우크라이나)은 각자 위치(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쓴 데 동조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 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돈바스를 양보’하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윽박지른 것으로 알려져, 앞선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언급을 고리로 그의 친러시아 행보를 꼬집은 모양새다.
이날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등 지도부가 참여했다.
정상들은 “우크라이나가 휴전 전과 도중, 이후에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도 했다. 이는 영국·프랑스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후 안보군 배치를 추진하는 ‘의지의 연합’을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의지의 연합 20여개국 정상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영국 런던에서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성명과는 별도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로베르트 골로프 슬로베니아 총리와 기자회견을 열어 “(종전을 위한 우크라이나) 영토 협상은 젤렌스키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3월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 협정에 서명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지만, 러시아는 결코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며 푸틴의 전쟁 종식 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이처럼 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지 목소리를 높이는 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포기하라’는 푸틴 대통령 주장에 동조하면서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격전지이자, 푸틴 대통령이 2014년 돈바스 내전 때부터 차지하려고 공 들인 땅이다. 이에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이후 이곳에 참호·지뢰·대전차 장애물 등으로 짜인 요새를 겹겹이 구축해뒀다. 이곳을 내어주면 수도 키이우까지는 방어시설이 부족한 평야지대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은 물론 유럽을 향해 서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이날 미국 워싱턴으로 떠났다. 그의 방미 일정은 이날 오후 늦게 급히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다. 뤼터 사무총장은 돈바스 양보가 서방 안보에 치명적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필요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