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납치·감금 피해자 구출을 위해 군사 작전이 필요하다는 일부 정치인의 발언이 한국의 대아세안 외교에 큰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출 작전을 펼 군사적 능력을 우리 군이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인 지난 15일 아세안 국가인 타이(태국)의 유력 신문인 방콕포스트는 1면 기사에서 “한국이 국경을 넘나드는 사기 범죄자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며 “사기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한국이)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보도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의원과 이언주·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최근 캄보디아에 대한 군사적 조처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주타이 한국 대사관은 당일 페이스북에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해당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도 군사조치 발언에 부정적이다. 지난 20일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캄보디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는 (해당국) 주권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영토 안에서 한국군의 무력 사용은 주권 침해이자 적대 행위로 간주돼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 2011년 1월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한국 선원들을 구출해낸 아덴만 여명 작전의 당시 작전 지역은 '공해’ 바다였기에 가능했다.
또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다음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되는데 아세안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나라들로 우리가 외교 무대를 확장해야 할 곳들”이라며 “우리의 새로운 시장이자 협력파트너인 만큼 잠시 감정적인 대응을 해서 아세안 전체로부터 한국의 이미지를 악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는 26~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3 정상회의 때 이재명 대통령이 아세안 외교 무대에 데뷔하는데, ‘군사 작전’ 주장이 상당한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아세안을 중심에 두고 인도 및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 국가들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을 확대·발전시켜 나가려고 한다.
한국은 캄보디아에서 구출작전을 펼 군사적 능력도 없다. 군사작전을 하려면 한국인들이 어느 곳에 얼마나 붙잡혀 있는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지역을 24시간 실시간 감시·정찰·탐지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 인공위성 등 첨단 자산이 필요하다. 작전을 도울 캄보디아 협력자 등 현지 정보망도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군은 대북 감시에 집중하고 있고 캄보디아에는 이런 감시정찰탐지 능력과 인적 정보망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인 감금 장소는 프놈펜의 태자단지, 원구단지, 망고단지, 시하누크빌 등 최소한 수십곳이 꼽힌다. 범죄단지는 철조망과 감시장비로 통제되며, 창문에는 철창, 출입구에는 무장 경비원이 상주한다고 한다. 다양한 특수작전 경험이 있는 군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감금장소 한 곳당 최소 30~40명의 작전 병력과 이들을 도울 병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수십 곳에서 동시 군사작전을 펴려면 5백명에서 1천명가량의 병력과 각종 장비, 탄약·식량·유류 등 군수 물자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 정도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캄보디아까지 보내기도 어렵다. 장거리 수송기도 공중급유 수송기를 빼면 마땅찮은 데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군 무장병력이 탄 군용기의 영공 통과나 중간 기착을 허용할 가능성도 작다. 해군 상륙함에 무장병력을 싣고 가면, 탄약·유류 등을 적재한 군수 지원함 등이 따라가야 한다. 캄보디아군이 한국 군함의 자국 항구 정박을 허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캄보디아에서 군사작전을 하려면 캄보디아까지 병력과 물자를 보내고 현지에 작전기지, 배후지원 기지를 세워야 하는데, 이런 첫 단추부터 한국군에겐 버겁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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