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파는 북미·극동산 위기종, 유럽산 위급종
한국 민물장어 3위 소비국, 주로 극동산뱀장어 먹어
국제적으로 극동산 위기종이나, 우리나라 지정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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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음식으로 소비되는 민물장어 대부분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에 속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어 소비는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어, 종 보전과 지속가능한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민물장어 소비량은 세계 3위 수준이다.
가이후 겐조 일본 주오대 교수 등 국제연구진이 민물장어의 소비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중국·일본·영국·미국 등 전 세계 11개 국가 26개 도시의 식당·소매점에서 장어를 구입해 디엔에이(DNA)를 분석한 결과, 유통되는 장어의 99% 이상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민물장어 소비 구조에 대한 정량적 연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민물장어는 몸이 뱀처럼 둥글고 길어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뱀장어라고 불린다. 바다에서 태어나지만, 생애 대부분을 민물(강)에서 서식하고, 다 자라난 뒤에는 바다에 내려가 산란하는 대표적 강하성 어류다. 전 세계적으로 16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바다장어(붕장어, 먹장어, 갯장어)와 달리 민물장어는 양식이 매우 어려워 가치가 높은 어족 자원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양식용 치어는 국제 거래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밀렵·밀수 등의 불법 행위도 벌어진다.
연구진은 어떤 종의 민물장어가 어디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23~2025년 11개 국가·26개 도시에서 282개의 민물장어 샘플을 소매점과 식당에서 수집했다. 디엔에이 바코드(생물의 고유한 디엔에이 서열로, 다른 종과 구별되는 유전자 영역) 분석 결과, 유통 중인 장어는 북미뱀장어·극동산뱀장어·유럽산뱀장어·동남아산뱀장어 등 4종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뱀장어 자원 보존을 위한 동북아국가 협의회’가 생산 및 무역 통계로 추정한 국가별 유통량을 가중치로 적용해 가장 많이 소비되는 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세계농업기구 기준으로는 북미뱀장어가 75.3%로 가장 많았고, 극동산뱀장어(18%), 유럽산뱀장어(6.7%), 동남아산뱀장어(0.02%) 순이었다. 반면 협의체 통계를 반영하면 북미뱀장어가 52.7%, 극동산뱀장어 43.5%, 유럽산뱀장어 3.6%, 동남아산뱀장어 0.2%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통계 출처에 관계없이, 전 세계 소비량 99%에 해당하는 민물장어 3종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민물장어 16종 가운데 10종을 멸종위기 목록에 올리고 있는데, 북미산뱀장어·극동산뱀장어는 위기(EN)종으로, 유럽산뱀장어는 위급(CR)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유통되는 민물장어의 종뿐 아니라 주요 소비국 순위도 공개했는데, 우리나라는 1위 중국, 2위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공급량(소비량 추정치)이 많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20~2022년 평균을 보면, 중국은 약 17만1995톤, 일본은 5만4999톤, 한국은 1만8812톤에 달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소비되는 극동산뱀장어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국내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연구진은 지난 17일 주오대 보도자료에서 “매년 각국 정부, 양식업자, 전문가들이 모여 민물장어 어획량과 양식 생산량을 수집·공표하지만, 협의체가 발표하는 양식량과 식량농업기구 통계가 큰 차이를 보인다”면서 “양식 및 교역 데이터의 정확성 개선이 시급하며, 이는 민물장어의 지속가능한 이용이 극도로 어려운 상태임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최근 민물장어 전체 종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사이테스, CITES)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유럽산뱀장어는 지난 2009년 사이테스 부속서 II 종 동물로 등재돼, 현재 수출입 때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양식용 치어(실뱀장어)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최근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실뱀장어 민관협의체’ 등을 꾸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