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심어놓고 계속 비가 와부렀잖아요. 햇빛 볼 날이 없어부니까 밑동이 다 썩어부렀어.”
전남 해남군 산이면 농민 김효수(68)씨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나 같은 농사 기술자도 어찌 못할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30년째 짓고 있는 8300㎡(2500평) 규모의 배추밭엔 밑동이 누렇게 짓무른 채 성장을 멈춘 배추들이 수두룩했다. 배추 무름병은 배추 뿌리에 물이 지속해서 닿아 연약해지면서 발생하며, 세균성 병해여서 주변으로 번진다. 김씨는 “지난해 홍수 피해 땐 영양제라도 살포해 배추를 살릴 수 있었는데, 이번엔 무름병 감염으로 30% 정도 피해가 발생했다.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배추 무름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병한다. 생육기인 9월 한 달간 강수일수가 19일로 지난해보다 9일 많았고, 평균기온은 23.5도로 1.7도 높았다. 올해 가을배추 전국 재배면적은 1만3403㏊로 지난해에 견줘 2.5% 증가했다. 전남도 쪽은 “해남 가을·겨울 배추 재배면적 5044㏊ 가운데 150㏊(3%)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충북 괴산, 충남 홍성, 전북 부안 등 전국 주요 산지에서도 배추 무름병이 발생했다. 배추 무름병뿐 아니라 뿌리썩음병과 뿌리 마름병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농민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3%일 뿐, 피해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해남배추생산자협회는 22일 오전 10시30분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무름병 피해 배추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연재해 배추 피해 조사와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정거섭 해남배추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육묘 시기 이상기후와 폭염과 9월 초 잦은 비로 발생한 자연재해”라며 “정부에서 피해조사를 한 뒤 자연재해로 인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쪽은 “각 자치단체에서 영양제를 지원하는 등 생육관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름병이 확산하면 김장용 배추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8월말부터 9월초에 심은 배추의 무름병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해남배추생산자협회 관계자는 “서울 김장 성수기인 11월초부터 11월25일까지 출하할 예정이었던 배추의 상당수가 무름병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 쪽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배추 무름병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배추 작황이 괜찮다. 이번 주부터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배추 생육도 좋아질 것으로 보여 김장철 수급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