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 된 다카이치, 극우 행보 자제할까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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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1. 오후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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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당선자가 지난 20일 일본 도쿄 국회에서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의 내각 총리대신 임명이 결정됐다.”

21일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하원) 의장이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를 일본 104번째 총리 당선자로 선언하자 장내에선 놀라움 섞인 탄성과 박수가 함께 터져 나왔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총리 선출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그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1차 투표에서 전체 중의원 465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237명 지지로 총리 당선을 확정 지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성으로 일본 헌정 사상 첫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향인 나라현에서 중의원 10선 의원을 지냈고,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4일엔 하야시 요시마사 당시 관방장관과 고이즈미 신지로 당시 농림수산상을 제치고 세차례 도전 끝에 자민당 첫 여성 총재가 됐다.

하지만 강경 우파 행보를 보여온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정부를 이끌게 되면서 한·일 관계는 우려가 크다. 실제 그는 ‘역사수정주의’로 대표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정치인이자, 정치 초년병 때부터 자신을 ‘정통 보수의 후계자’로 공언해왔다.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각료일 때도 빠짐없이 참배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추모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1994년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사죄·반성 뜻을 밝힌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1924∼2025)를 상대로 “지금 총리가 50년 전 정부 결정을 잘못이라고 할 권리가 있냐”거나 “국민적 협의 없이 멋대로 일본을 대표해 사과하는 건 곤란하다”고 따진 일이 최근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영토·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차관급 대신) 장관급이 다케시마의 날(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 행사에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라 불리는 분들이 있었지만,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적절한 인식을 드러내 왔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온 주체가 일본군이며, 일본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려는 인식이다.

그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 연설 서두에 외국인이 나라 공원의 사슴을 학대했다는 등 근거가 없는 배외주의 주장으로 표를 끌어모으려고도 했다. 총리 선거 승리를 위해 극우 정당 참정당에 협조를 부탁하며 자민당과 참정당이 “정책이 가깝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혐한 인사인 하쿠타 나오키 일본보수당 대표와도 20일 만나 자민당과 일본보수당의 “국가관이 가깝다”고도 말했다.

보수 성향 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연립에 끌어들였기 때문에 다카이치 체제의 우경화가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일본유신회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지역 정당이자 소수정당으로 공명당이 연립여당에서 이탈한 틈을 노려 ‘정책 실현과 지역 정당 탈피’를 현실화할 방안으로 자민당과 손잡았다. 실제 지난 20일 두 정당이 서명한 연립정당 최종 합의문에는 자위대의 적 기지 공격능력 강화나 현재 구난 등에 한정된 무기 수출(방위 장비 이전)을 손쉽게 하자는 방안,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전력 보유 금지 및 전쟁 포기) 개정을 위한 협의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외국인 규제를 담당하는 전담 부처 신설, 외국인 투자 제한 등 배외주의 강화 정책들도 엿보인다. 일본공산당은 “나쁜 정치의 향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총리 다카이치’가 되어서는 당분간 비교적 절제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총리 선거를 앞둔 17∼19일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가을 제사) 기간에 참배하지 않고 공물 대금만 봉납했다.

나카토 사치오 리쓰메이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 때와 달리 한·일 관계에 절제된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다카이치 총리도 동북아시아 환경을 고려해 과거사 문제로 대립을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외교 분야가 과거사 문제와 뒤섞이지 않도록 ‘투트랙 접근'을 어떻게 적용할지가 향후 한·일 관계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마침 오는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 회의를 이재명 정부와 다카이치 정부의 관계를 빠르게 정착시킬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나카토 교수는 “아펙 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 이시바 전 총리 때의 셔틀외교를 이어가자는 방식으로 상호 이해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의 이런 태도가 신념이 바뀌어서가 아니며 그의 지지 기반도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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