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됐다가 송환된 한국인 피의자들에 대해 무더기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며 경찰 수사가 본격화 되고 있다. 이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감금 등 강요에 의해 범죄에 휘말렸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런 주장이 ‘객관적 증거’와 합치하는지가 향후 수사의 관건이 될 걸로 보인다.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사기 범죄 조직에 연루돼 올해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판결문을 20일 보면, ‘자발성’과 ‘적극성’이 혐의 인정과 형량을 갈랐다. 지난해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주식 리딩방 투자 사기에 가담한 ㄱ씨는 ‘업무 내용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출국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ㄱ씨가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자발적 의사로 출국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는 점”을 들어 징역형을 선고했다. 범행을 강요당했다는 ㄱ씨 쪽 주장에 대해서도 “조직원들의 폭행과 협박의 내용은 단순히 밀치거나 ‘일하고 돈을 벌어라’ 말했다는 정도에 불과한 점 등에 비추어 강요된 범행이라는 ㄱ씨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봤다. ‘강요된 범죄’를 주장하는 데 있어 단순한 증언이 아닌, 객관적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주식 리딩방 투자 사기 조직원으로부터 계좌 관리 등 업무를 맡아줄 것을 제안받고 캄보디아로 출국한 ㄴ씨도 감시·감금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ㄴ씨의 경우 같은 조직에 있던 다른 피고인들의 사례까지 비교됐다. 재판부는 △같은 숙소에 있던 다른 피고인은 입국 2∼3일 만에 도망쳤으며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ㄴ씨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 했다.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이들도 수사·재판 과정에서 ‘감금·폭행·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방어 논리를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서너명의 피의자가 스캠 단지 조직원들로부터 감금·폭행 등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이날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한 변호인은 “채무로 끌려가 범행에 가담했고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피의자 변호인은 “조직도를 제출할 정도로 수사에 협조했다”며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다. 한 피의자는 기자들에게 “전기 지짐을 당했다”, “죽기 전까지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고은 법무법인 온강 대표변호사는 “이번에 송환된 피의자 대부분이 캄보디아 경찰의 급습 때 검거된 이들”이라며 “피해자성을 주장하기엔 검거 경위뿐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고문 흔적 등을 찾아볼 수 없어 형법 제12조(강요된 행위)가 적용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최근 판례 흐름을 보면,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진술만으로는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속적 학대 흔적이 나오거나, 범죄 조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구체적 물증 등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처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