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철 | 워싱턴 특파원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엉망진창”이라는 게 이유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백악관 오벌 오피스 기자회견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가리켜 “다음 배치 지역”이라고 칭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멤피스, 포틀랜드, 시카고에 이어 여섯번째입니다.
‘아메리카 퍼스트’ 트럼프 대통령이 파병에서도 미국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파병했을 땐 한국 특파원들이 대거 현장을 찾을 정도의 빅뉴스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일상 속 풍경’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싱턴 도심에 가면 무장한 군인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명분은 ‘불안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로 민주당 지지 강세 도시를 골라 그곳의 이민 단속 반대 시위, 높은 범죄율 등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보내겠다고 선포합니다. 민주당의 실패를, 트럼프가 고친다는 서사입니다.
미국은 연방군과 주방위군으로 나뉩니다. 연방군은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군’입니다. 국방부 소속의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우주군 등입니다. 주방위군은 주지사가 사령관으로 있는 예비군 성격의 주방위조직입니다. 평시엔 자연재해 복구, 치안 지원, 폭동 진압 등의 업무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파병을 위해 택한 방식은 이런 주방위군을 연방화한 뒤 대통령 명에 따라 특정 지역으로 파병하는 전략입니다. 연방군대는 원칙상 국내 치안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남부 주에서 연방군이 민간 치안·정치 개입에 남용되자, ‘미국의 군대는 의회가 명시적으로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 법률의 집행을 위해 민간 당국의 명령을 수행하거나 경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Posse Comitatus Act·포시 코미타투스 법)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전략에도 두가지 법적 관문이 있습니다. ①주지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방위군을 연방화할 수 있는가 ②연방군대가 치안업무에 동원될 수 없다면, 연방화된 주방위군도 치안업무에 동원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법원은 ①에 대해선 사안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②에 대해선 대체로 ‘치안업무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연방화된 주방위군이 ‘순찰’만 하지 단속·체포·심문 등 경찰권은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입니다.(일부 지역에선 연방화된 주방위군이 경찰권을 행사했다는 목격담이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반란법’입니다. ‘불법적 결사·집회 또는 연방에 대한 반란’ 등이 발생했다고 대통령이 판단하면 반란법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포시 코미타투스 법은 무력화됩니다. ‘연방군대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공식이 깨진다는 뜻입니다. 군이 행정조직 자체를 대체하거나 정지시키는 정치·헌정 질서의 중단이 계엄입니다. 계엄령 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반란법 발동이 ‘미국판 계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트럼프에게 파병은 ‘법과 질서’ 이미지의 핵심입니다. ‘군을 투입해야 할 만큼 민주당 도시들이 무너졌다’는 서사를 완성하는 ‘행위예술’입니다. 군의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가능케 할 반란법 발동 카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실제 실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 한마디에 도시로 들어오는 군을 시민이 막아서는 장면은 그 자체로 ‘내전’입니다. 다음 ‘엉망진창’ 도시는 어디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