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3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ㄱ씨는 자신이 로맨스 스캠·주식 리딩 사기 집단의 말단에서 일하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출국을 감행한 것은 결국 생계 문제였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캄보디아에서 한몫 챙길 수 있다’는 꼬드김에 넘어갈 이유가 됐다. 사설 경비원의 감시 아래 몸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해야 겨우 외출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ㄱ씨는 한차례 귀국했다가 다시 캄보디아로 건너가 ‘일’을 지속했다. 중국인 조직원들의 대본에 따라 주식 리딩 사기 피해자들을 속이는 ‘콜센터 상담원’ 행세는 7개월간 이어졌다. 이전까지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던 ㄱ씨는 지난 1월 대전지법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겨레가 캄보디아에서 각종 사기 범죄에 연루돼 올해 실형을 선고받은 6명의 판결문을 15일 분석해 보니,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종 전과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단기간 고수익’의 유혹에 넘어간 뒤에는 강압과 착취적 환경 속에서도 경제적 보상의 끈을 놓지 못했다. 회사처럼 체계와 규율을 갖춘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이 이들에게 일종의 ‘직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유혹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한 고리’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닿았다. 별다른 직업도 경력도 없는 ㄴ씨는 지난해 3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 들어주고 댓글만 남겨주면 되는 일인데, 해외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갔다 오라”는 미심쩍은 제안에 남자친구와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ㄴ씨와 남자친구는 채팅방 회원인 척 가장해 다른 피해자를 안심시키고, 수익이 발생했다는 댓글을 다는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대만에 사는 28살 혼혈 여성’으로 가장해 피해자에게 489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붙잡힌 ㄷ씨는 3급 지적장애인이었다. ㄷ씨는 지난해 3월 ‘해외 고액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네이버밴드 게시글을 보고 캄보디아로 출국했고, ‘로맨스 스캠’ 조직의 조직원이 됐다.
캄보디아 근무환경은 감시와 협박 속에 이뤄지는 ‘노동 착취’에 가까웠지만, 일종의 회사처럼 경제적 보상도 적지 않은 탓에 한번 발을 들인 이들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캄퐁스페우 주의 한 범죄단지는 2미터 높이의 담벼락에 둘러싸여 전기충격기로 무장한 사설경비원이 조직원들의 이탈을 차단하고, 하루 12시간을 일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팀장급 조직원에게는 9000달러, 한국 여성 조직원에게는 5000달러의 월급을 주고, 3개월이상 근무하면 매출액의 0.1∼0.2%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등 적지 않은 수입도 제공했다. 매달 2000달러의 월급을 주면서, 실적(입금된 피해액수)의 10%를 수당으로 지급하는 범죄조직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주변인들을 캄보디아에 범죄조직에 끌어들이고, 귀국했다가도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ㄱ씨와 같은 조직에 몸담았던 ㄹ씨는 한국에 돌아왔다가 ‘더 좋은 조직이 있다’는 중국인 조직원 제안으로 다시 캄보디아로 들어가고, 주변 지인을 조직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가 일했던 범죄단지 역시 여권을 빼앗고,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전기봉을 든 조직원이 근태를 감시했다. 그런데도 ㄹ씨는 ‘비서’와 ‘증권회사 매니저’를 사칭해 한국인 피해자들에게서 돈을 빼돌리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대전지법은 ㄹ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면서 “쉽게 돈을 벌 유혹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캄보디아로 건너가 범죄단체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한차례 입국했다가 다시 캄보디아로 출국해 또 다른 범죄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며 “피고인이 동종 전과나 벌금형을 초과하는 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해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