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이 K-문화로 어휘에 상당한 영향”
“밥과 다양한 재료를 해조류로 돌돌 말아 한입 크기로 썰어 먹는 한국 요리.”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펴내는 영어사전(OED)은 ‘kimbap’(김밥)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올해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프닝 장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입안 가득 김밥을 흡입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앞서 2023년에는 미국 마트 체인 ‘트레이더 조‘에서 냉동 김밥이 품절 사태로 이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뉴욕타임스 쿠킹 섹션은 2020년 “종종 스시로 잘못 불리지는 김밥은 고유의 풍미와 역사를 가진 인기 있는 한국요리“라는 설명과 함께 요리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단무지(danmuji)는 이미 김밥용으로 커팅돼 판매되는 것도 있다”는 요리 팁을 덧붙였다.
‘kimbap’이 영문에서 나타나는 빈도는 100만 단어당 0.01회 정도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17년부터 주요 온라인 뉴스 매체 말뭉치에서 추출한 결과다. 2022년 이후 출현 빈도가 빠르게 증가해 올해는 0.03회에 근접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글날인 9일 국립국어원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는 48개라고 한다. 한겨레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업데이트 현황을 직접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33개가 최근 4년 사이 등재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서 파생하거나 기원을 둔 새 영어단어에 대해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타일. 요즘은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 인기가 계속 커지면서 모든 것에 ‘K-’라는 접두어가 붙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한국어 단어의 유입은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타일 등 한국 대중문화가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아진 한류(hallyu) 현상에 크게 힘입었다. 1990년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 상승은 2010년대에 이르러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다양한 한국 엔터테인먼트 성공에 힘입어 전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한국의 문화 및 소비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글로벌 공용어인 영어를 통해 세계로 판매되고 있다. 영어가 공식 언어도 아니고 다수 언어도 아닌 국가가 현대 영어 어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이다. 현재 K-트렌드는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타일 등 다양한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세계 각지의 영어 사용자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3개월마다 새 단어를 업데이트한다. 최근 한국어 등재는 2021년 9월과 2024년 12월에 있었다.
2021년 9월에는 한국어 26개가 한꺼번에 등재됐다.
‘주체’는 북한의 주체사상 관련 용어로 등재됐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국가 자주성 실현을 추구하지만 전체주의를 조장하는 부정적 의미로 간주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2024년 12월에는 한국어 7개가 새로 들어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달고나’에 대한 예문으로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기사 예문(2022)과 함께 “ppopgi(뽑기)로도 알려져 있다”(2021)는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더 선’의 기사를 소개했다. ‘막내’의 예문으로는 “블랙핑크 리사의 생일에 나머지 세 멤버가 ‘사랑하는 막내’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2024)는 인도 ‘힌두스탄 타임스’ 기사를 실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가장 먼저 실린 한국어는 ‘한글’(hangul)이다. 한겨레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개정 내역을 확인해 보니, 1976년 증보판에 ‘hangul’이 처음 등장한다. ‘한글’과 ‘한국어’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으로 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글자)를 의미하고, 한국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른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한글에 대해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구성하는 문자로 이루어진 한글은, 조음 위치 등 음성적 특성을 나타내는 더 작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문자들이 모여 음절 단위의 더 큰 글자가 만들어진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으로 전해지며, 한국어의 공식 문자 체계이다. 남한에서는 한글,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불린다”는 설명을 달았다.
한글이 등재된 같은 해에 김치(kimchi), 막걸리(makkoli), 기생(gisaeng), 면(myon, 행정구역)이 옥스퍼드 사전에 추가됐다. 한글과 김치는 2021년에 그 의미가 전면 개정됐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그만큼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1982년에 한글의 다른 표현인 언문(onmun)과 함께 온돌(ondol), 리(ri, 거리단위)가 추가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10개의 한국어가 다시 등재됐다. 1986년에 태권도(taekwondo), 원(won, 화폐단위), 시조(sijo), 양반(yangbann)이, 1989년에는 재벌(chaebol), 비빔밥(bibimbap), 소주(soju), 된장(doenjang), 합기도(hapkido), 고누(kono, 전통 놀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579돌 한글날을 맞아 페이스북에 “위대한 한글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원천”이라고 썼다. 이 대통령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한류 열풍 역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한글의 힘에서 발원한 것이다. 한류가 세계 속에 얼마나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느냐도 우리 문화의 원천인 한글 사랑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