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안보 참모 개혁 시급…자주파 있어야 남북 진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26일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이 정부에 있다. 이른바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며 외교 안보 진용의 인적 교체를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해 이렇게 말하며 “대통령 주변 측근들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싫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 시즌2’가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 9·19 군사 분야 합의 등 좋은 조건을 만들어 놓고도 한-미 워킹그룹에 발목이 붙잡혀 아무것도 못 했다. 심지어 2019년 1월 북한에 독감약 3일치를 보내는 것도 ‘트럭(에 실어보내는 것)은 안 된다’는 미국 때문에 못 보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주변에 소위 ‘자주파’가 있어 앞으로 나갔다”며 “하지만 동맹파가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지금 그렇게 돼 가고 있다. 당 대표든, 자문회의 의장님이든 국방위원회나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꾸짖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파-동맹파는 각각 한반도 문제에서 자주노선을 강조하는 그룹과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그룹을 뜻한다. 정 전 장관이 얘기하는 동맹파는 외교부 출신이 주축인, 위성락 국가안보 실장 등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그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출신인 정 전 장관은 이종석 국정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대표적인 자주파 인사로 꼽힌다.
정 전 장관은 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이엔디(E.N.D) 이니셔티브’도 비판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동결로 시작해서 축소, 그다음 최종 목표인 비핵화로 가야 한다”며 “참모들이 (북핵) 동결의 조건이라든가 방법론에 대해 대통령이 얘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무슨 ‘END’라는 멋있는 글자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기에 비핵화를 왜 넣느냐. 대통령님을 끝장(end)낼 일 있느냐”고 했다. 정 전 장관은 “김정은이 지난 9월21일 ‘비핵화를 얘기하면 절대 북미 정상회담에 안 나가겠다’고 했으면, 설사 (그전에) 대통령 유엔 총회 연설을 만들어 놨다고 해도 그걸 고쳐 비핵화는 빼고 얘기를 하도록 해야 했다. 지금 이렇게 해서는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계 때문에 남북 관계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본인 페이스북에 “‘똥별’이라는 과한 표현까지 쓰면서 국방비를 이렇게 많이 쓰는 나라에서 외국 군대 없으면 국방을 못 한다는 식의 인식을 질타한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고 적은 것을 언급하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이 대통령 행보와 관련해 군대에서 저항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민간 출신인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겨냥한 듯 “문민 장관을 보내 군인들을 장악하라고 했더니 끌려다니면 뭘 하느냐.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은 바보가 된다. (민주당이) 국방부 장관을 격려하든 잡도리하든 군인들을 좀 통제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한마디만 부탁하겠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전반기에 남북 관계가 한 발짝 앞서가면서 북미 관계나 북핵 문제 해결에 기초를 놓았던 것은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에 미국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자리에 외교부 임성남 차관도, 박윤주 차관도 와 계시지만 직업 외교관들이 대통령 지근거리에서는 될 일이 없다. 이건 어떻게 시정 좀 해 주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