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 논설위원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노만석 대검 차장이 지난 3일 부산고검을 방문해 “적법절차를 지키면서 보완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을 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기소를 독점한 검찰에 어떤 형태의 수사권도 남기지 않으려는 여당의 검찰개혁 방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검찰을 대표하는 직위에 있는 자의 이런 발언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검찰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이 빈틈을 보이거나, 정치적 환경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 때 나온다. 오랜 기간 ‘정치검찰’에 익숙한 검사들은 이를 감지할 수 있는 정치적 후각이 뛰어나다.
검찰이 감지한 빈틈은 지난 1일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발언이었던 것 같다. 우 수석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을 겨냥해 “논쟁을 하라고 했더니, 싸움을 건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 의원과 임 지검장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봉욱 민정수석 등에 대해 ‘장관이 너무 나갔다’(민형배), ‘검찰개혁 5적’(임은정)이라는 말로 공격한 바 있다. 우 수석은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 참모의 말은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우 수석의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이 두 사람의 말에 불쾌해한 것은 물론이고, 여당의 검찰개혁안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이보다 앞서 있었던 정 장관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재검토’ 발언은 검찰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췄다. 보완수사권은 검찰이 반드시 지키고 싶어 하는 마지노선이다. 보완수사도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결합하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기소되면 인생이 결딴난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말처럼 기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 그런 힘을 가진 검찰에 수사권을 준다는 것은 기소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바로 이 길을 봉쇄하는 게 검찰개혁인데, 검찰개혁 주무 장관이 이 길을 막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들렸다.
12·3 비상계엄 당일 국회로 몰려간 시민들은 검찰개혁을 ‘내란 종식’의 필요조건으로 인식한다. 내란의 1차적 원인은 윤석열이라는 ‘괴물’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순전히 검찰 때문에 가능했다. 기소를 독점한 검찰이 수사권까지 행사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됐고, 윤석열은 이런 검찰을 등에 업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검찰을 동원해 자신의 실정을 비판하는 시민사회와 야당, 언론을 탄압했다. 그래도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군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내란 종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정치를 하겠다고 덤볐던 행태를 다시는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검찰에 어떤 형태로든 수사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일반 시민들의 상식이다.
시민의 상식과 충돌하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검찰은 그 틈을 노리고 반격한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실패가 남긴 교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조국 사태’가 한창인 2019년 가을 “검찰개혁에 관해 법무부와 검찰은 함께 개혁의 주체이고, 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역사가 말해준다. 시민들은 검찰개혁의 고삐를 바싹 당길 것을 주문했지만, 문재인 정권은 그러지 못했다. 윤석열은 ‘탈원전’ ‘김학의 긴급출금’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등 자신의 대권 가도를 닦는 수사에 올인했다. 검찰개혁은 물건너가 버렸다.
이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국민적 동의를 얻으라고 주문한다. 헌법에 ‘검찰총장’이란 용어가 있다는 이유로 검찰청을 헌법기관이라고 우기는 사람들까지 동의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검찰 해체에 따른 시행착오가 두렵다면 개혁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게 불안하다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 된다. 검찰이 보완수사권으로 준동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촘촘히 만들고 시민들을 설득하라. 어차피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개혁 국면에서 가장 나쁜 선택이 ‘국민적 동의’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면 실기한다. 시간은 검찰개혁의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