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양심수 코스프레’가 노리는 것 [아침햇발]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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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8.12. 오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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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4월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춘재 | 논설위원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지귀연 판사가 ‘윤석열 재판’을 궐석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병을 핑계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자 내린 결정이다.

윤석열은 7월10일, 17일, 24일에 이어 법원 휴정기 이후 첫 재판인 8월11일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내란 특검은 ‘구인영장 발부 등 단호한 조처를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부상 우려 및 인권 보호 문제를 고려해 궐석재판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맞섰다. 지귀연 판사는 이번에도 피고인 쪽 편을 들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편든다는 인상을 줄까 봐 “불출석해서 얻게 되는 불이익은 피고인이 모두 감수하셔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

궐석재판에서 피고인이 얻는 불이익은 증인 신문에서 불리한 진술이 나올 때 즉석에서 반박할 수 없고, 재판부에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줘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하지만 윤석열에겐 딱히 불이익이 될 것 같지 않다. 12·3 내란은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공개돼 사실 관계를 다툴 여지가 별로 없고, 내란 우두머리의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다. 법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일거에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재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재판에 안 나간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게 없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윤석열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구치소 칩거를 ‘자포자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내란 특검을 비롯한 3대 특검이 가동되면서 더 이상 방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새로운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측근들도 하나둘씩 배신을 한다. 채 상병 특검에 불려간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김건희 특검에 출석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그동안 딱 잡아뗐던 ‘격노설’과 ‘공천개입설’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주범과 엮이는 걸 차단하려는 종범들의 ‘자기 보호 본능’이다. 특검 수사에 가속도가 붙으면 이런 식의 이탈자는 더 나올 것이다. 윤석열의 처지에선 특검 수사에 응해봤자 이로울 게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누구인가.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뒤 참모들의 만류에도 제2, 제3의 계엄을 시도했다.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유혈 충돌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호처에 총기 사용을 독려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법정에선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민주적 선거제도를 부정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그는 법을 지켜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정치적 선동으로 판 뒤집기를 스스럼없이 시도한다.

그의 선동가적 기질은 검찰총장 때 이미 드러났다. 문재인 정권 당시 ‘검언유착’ 수사 방해와 판사 사찰 문건 등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징계를 추진하자, 측근 검사들을 동원해 ‘탈원전’ 및 ‘청와대 선거개입’ 수사로 맞불을 놓았다. 어이없게도 법원은 그의 선동에 놀아났다. 법원은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 윤석열이 구사한 각종 ‘법기술’을 흔쾌히 받아줬다. 판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대권 도전은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지금 노리는 건 내란 재판의 ‘정치화’다. 정상적인 재판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어떻게든 재판에 흠집을 내려고 애를 쓴다. 김건희 특검의 체포영장 집행에 극렬 저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법한 영장 집행을 인권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심수 코스프레를 한다. 나중에 정치적 지형이 바뀌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걸까.

지귀연 판사의 대선배인 김영일 재판장(전 헌법재판관)은 전두환·노태우의 재판 방해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변호인단의 재판 지연 전략으로 구속기간(6개월)이 만료되자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끝냈다. 전직 대법관 등 전관들로 구성된 변호인단이 반발했지만, 김영일 재판장은 꿈쩍도 안 했다. 윤관 대법원장은 김영일 재판장에게 다른 사건을 배당하지 않고 이 재판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1심이 빨리 끝난 덕분에 이 사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14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 재판 1심 재판장인 김세윤 판사도 마찬가지다. 주 4회 재판으로 강행군을 했다. 사법부의 신뢰는 그렇게 지켜지는 것이다. 지귀연 판사는 올해 안에 윤석열 1심 재판을 끝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이를 독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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