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김채운 기자 TALK
입력
수정 2025.01.24. 오전 8:28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 2021년 4월7일, 서울 동작구의 한 투표소에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당시 20대 이하 남성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 이는 60대 이상 남성(70.2%)보다 높은 수치였다. 연합뉴스


김채운 | 정치팀 기자

“2030 남성은 정책·인식·사회적으로 고립됐는데, 그렇게 만든 데 (국회의원) 모두 책임이 있죠.”

지난 6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33살 한 남성은 이렇게 말하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했다. 제 역할 못 하는 국회를 향한 ‘경고성 계엄’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와 같은 30대 남성은 한남동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 현장을 주도했다. 그로부터 2주 뒤, 서울서부지법을 때려 부수고 경찰을 폭행한 ‘1·19 폭동’으로 체포된 이들의 절반 이상이 2030 남성으로 드러났다.

4년 전 대학생 시절, ‘20대 남자 현상’을 연구한 적이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며 ‘20대 현상’이 급부상하던 때였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남성의 73%가 보수 쪽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60대 이상 남성 70%보다 높은 수치)은 충격을 안겼다. 이들은 두달 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헌정사상 첫 ‘30대 0선 당대표’로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이 호명하는 ‘이대남’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또래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1989~2002년생 남성 240명을 설문 조사하고, 그중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결론은 두가지였다. 이들이 계급·지역 등 전통적인 정치 변수를 초월한 새로운 정치 집단이 됐다는 것과, 생애과정(학교·군대·연애)에서 누적된 ‘박탈감’을 ‘분노’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흔히 반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이 분노는 젠더 이슈를 넘어서는 어떤 전방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4년 뒤, 이들 가운데 일부가 투표장이 아닌 ‘아스팔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래 남자들과 부대끼며 절실히 느끼는 건, 젊은 남성들에겐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개인의 고통을 공동의 문제로, 그리하여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연대의 언어’가 없다. 대신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과 ‘시장주의’의 언어만이 흘러넘친다. ‘이대남’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저마다의 삶의 아픔이 있을진대, 이를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자조한다. 또래 여성들이 개인의 성차별 경험을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의 문제’로 언어화하고 길거리로 나와 제도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남성들은 예컨대 강제징집 제도나 군 인권 문제에 관해 그 어떤 담론도 내놓지 못했다. 2030 남성 전체로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일부 ‘극우 행동대장’들의 집회와 폭동도 개별적 분노를 표출한 것일 뿐,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연대의 성격은 아니었다.

4년 전 보고서는 이렇게 끝맺는다. “생존 경쟁과 미래 전망이 어두운 시대 상황에 더해 생계부양자, 강한 남성이라는 전통적 가부장 모델을 요구받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젊은 남성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화’만 내고 있다는 분석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들의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앞으로 한국 정치의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젊은 남자들이 ‘이대남’ 등으로 뭉뚱그려지지 말고, 자기 삶의 아픔을 주체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기를, 연대를 통해 삶의 굽이굽이를 넘어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