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장수통닭'에서 닭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맨 먼저 나오는 회. 왼쪽은 가슴살이고 오른쪽이 모래주머니와 날개다. 날개는 살을 잘게 쪼아 내놓는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손민호 기자
남도는 물산이 풍부하다. 하여 음식도 종류가 다양하다. ‘강해영’으로 뭉친 전남의 세 고장 강진·해남·영암도 그러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별난 음식을 저마다 거느리고 있다. 이를테면 강진에서는 육·해·공 식재료가 총출동한 회춘탕으로 보양하고, 해남에서는 토종닭 한 마리를 잡아 코스 요리로 즐긴다. 영암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다른 이유로 별난 음식이 있다. 살짝 귀띔하면, 해외여행을 안 가도 정통 해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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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닭 코스 요리
'장수통닭'의 코스 요리 상차림. 원래는 음식이 하나씩 나온다. 손민호 기자
통닭 하면 튀김이다. 온 국민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해남에서는 다르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쓰긴 하지만, 코스 요리가 나온다. 해남에서 통닭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해남 읍내에서 대흥사가 있는 삼산면으로 가는 길목. 돌고개라 불리는 야트막한 고개가 있다. 이 고개 모퉁이에 ‘코카상회’란 구멍가게가 있었고, 구멍가게 할머니가 토종닭 한 마리를 솥에 삶아 행인을 먹이곤 했다. 닭을 통째로 넣는다고 해서 ‘통닭’이라고 불렀고, 그 통닭을 앞세워 백숙집 간판이 내걸렸다. 1975년 개업한 ‘장수통닭’이다.
'장수통닭'의 백숙. 3㎏짜리 토종닭을 쓴다. 손민호 기자
장수통닭은 1대 박상례(1913∼93) 대표에 이어 딸 이철례(1945∼2025) 부부로 대물림됐고, 백숙집 메뉴도 하나씩 개발됐다. 텁텁한 가슴살을 어떻게 조리할까 궁리한 끝에 춘천 닭갈비를 본뜬 고추장 주물럭을 만들었고, 모래주머니(똥집)와 날개는 생선회처럼 내놨다. 그렇게 해남식 닭 코스 요리가 완성됐다.
장수통닭의 닭 코스 요리가 인기를 끌자 주변에서 닭 코스 요리를 하는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방 돌고개 주변으로 9개 집에서 닭 코스 요리를 한다. 세부 메뉴가 살짝 다르다.
해남 '장수통닭'. 해남식 닭 코스 요리의 원조집이다. 손민호 기자
현재 장수통닭은 3대 안덕준(53)씨가 맡고 있고, 덕준씨의 아들(27)도 식당에서 일한다. 장수통닭은 3㎏짜리 토종닭을 쓴다. 음식은 닭회∼닭구이∼주물럭∼백숙∼닭죽 순서로 나온다. 여름에는 해남식 닭 코스 요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닭회의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없다. 혹여 상할까 염려해서다. 자리에 앉자마자 애피타이저로 삶은 달걀이 나온다.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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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회춘탕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한 강진 회춘탕. '하나로식당'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회춘탕’이라는 이름은 솔직히 거부감이 든다. 먹을 게 넘치는 게 요즘 세상인데, 보란 듯이 보양식을 앞세워서다. 강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강진 회춘탕의 전통은 600년을 헤아린다. 조선 수군이 강진 남쪽 끝 마량포구에 진영을 설치했던 15세기부터 회춘탕과 비슷한 음식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회춘탕은 사실 간단한 음식이다. 귀하고 비싸고 몸에 좋은 온갖 산해진미를 넣고 푹 고우면 된다. 엄나무·헛개나무·느릅나무·당귀·가시오가피·칡·뽕나무·느릅나무·다시마 등을 넣고 육수를 낸 뒤 토종닭 한 마리를 넣고 끓이다가 문어·전복 같은 해물을 넣고 또 끓이면 끝이다. 언뜻 해물닭백숙 또는 전복닭백숙과 비슷하다.
강진 회춘탕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13년 강진군청이 광주여대 김지현 교수의 도움을 받아 회춘탕 레시피를 제작해 지역 식당에 전파했다. 회춘탕이라는 이름도 그때 완성됐다. 강진군청이 특허 등록을 마쳤고, 식당이 레시피를 지키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식재료의 크기와 수량은 물론이고 ‘닭 삶은 물은 버려야 한다’는 등의 조리법도 따라야 한다.
'하나로식당' 정혜정 대표. 강진군청이 레시피를 전파하기 전부터 회춘탕을 끓인 주인공이다. 손민호 기자
현재 강진에서 회춘탕을 파는 집은 모두 6곳이다. 대표적인 식당이 군청이 레시피를 전파하기 전부터 회춘탕을 끓여온 ‘하나로식당’이다. 1990년 강진군청 앞에서 하나로식당을 연 정혜정(65) 대표는 “옛날 방식으로 회춘탕을 끓였는데 군청에서 준 레시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춘탕의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하여 전날 예약하는 게 안전하다. 소금 한 톨 안 넣었는데 희한하게도 간이 맞는다. 나중에 닭죽까지 먹으면 어른 4명에게도 양이 많다. 1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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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우즈베크’ 밥상
영암의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파이즐리 어시허나'의 인기 메뉴 라그만. 중앙아시아식 라면으로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손민호 기자
‘대불산단’을 아시는지. 영암군 삼호읍에 조성된 대규모 산업단지다. 전체 면적은 약 21만㎢로, 32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외국인 노동자도 많다. 영암군청에 따르면 올 7월 현재 등록 외국인이 1만263명이다. 국적은 베트남·네팔·우즈베키스탄·중국·태국·몽골 등 20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베트남·네팔·우즈베키스탄 3개 나라가 제일 많다.
다국적 외국인이 모여 사니 식당도 다국적이다. 저마다 제 고향의 맛을 재현한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영암군에 따르면, 삼호읍에서 영업 중인 외국인 음식점은 54곳이다. 간판부터 다르다. 제 모국어로 쓴 간판을 내걸어 음식 사진이 없으면 뭘 파는 곳인지 짐작도 안 간다.
영암군 삼호읍 외국인 거리의 베트남 카페는 커피는 물론이고 코코넛 음료도 판다. 손민호 기자
재미있는 집도 있다. 연유 커피와 코코넛 음료를 파는 베트남 카페도 있고, 한국인은 입장이 안 되는 술집도 있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우즈베키스탄 식당 ‘파이즐리 어시허나’다. 다른 지역의 외국인 거리에선 보기 힘든 우즈베크 전통 식당이어서다.
영암의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파이즐리 어시허나'. 손민호 기자
'파이즐리 어시허나'의 주인 아스카노바 마디나 버눔(가운데)과 직원들. 손민호 기자
우즈베크는 이슬람 국가다. 하여 파이즐리 어시허나도 할랄 음식을 낸다. 식당 주인은 6년 전 한국에 정착한 우즈벡 여인 아스카로바 마디나 버눔(37).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우즈베크 사람만 1000명이 넘어 장사에 문제가 없단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우즈베크 별미가 알려져 한국인 손님도 꽤 찾는다고 한다.
대표 메뉴는 ‘우즈베크 라면’으로 알려진 라그먼, 아측 쿄시(소고기야채볶음), 어시(소고기볶음밥), 키르크마 샤슬릭(양꼬치구이) 등. 의외로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정근영 디자이너
강진ㆍ해남ㆍ영암=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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