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쪽 판결문에는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한 별건(바람픽쳐스 고가 인수 의혹)수사로 벌어진 일이 상세히 담겼다. 본건 SM엔터 주가 조작 수사는 2023년 2월 공개매수에 나섰다가 인수를 포기한 하이브의 금융감독원 진정에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15일 금감원 특별사법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1주일 뒤 돌연 바람픽쳐스를 압수수색한다. 2020년 카카오엔터가 400억원에 인수하기 전까지 바람픽쳐스 실질 경영자였던 이 전 부문장과 80% 지분을 보유한 부인인 배우 윤정희씨를 배임 혐의로 입건하면서다. 그는 두 차례 구속영장 청구와 배우자까지 연루된 별건수사에 극심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금감원과 검찰의 이전 여섯 차례 조사에선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가 별건 압수수색 이후부터 “시세조종을 공모했다”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 새로 도입된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신청해 주가조작 공범 기소도 면제받았다. 이에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에게 수사기관의 의도에 부합하는 취지의 진술을 함으로써 수사나 재판의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동기와 이유가 충분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믿지 않는다”고 배척했다.
이 전 부문장은 바람픽쳐스 수사로는 불구속기소가 됐지만 같은 재판부로부터 지난달 30일 1심 무죄를 받았다. “바람픽쳐스는 인지도가 높은 김은희 작가와 집필 계약을 체결했고, 스튜디오드래곤과 거액의 드라마 계약까지 체결한 가치 있는 회사”이고 “설령 수치상 가치와 인수 가격의 차가 크더라도 카카오엔터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다.
문제는 검찰만 없어지면 먼지떨이식 별건수사가 사라질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별건수사와 여죄수사의 경계가 모호하다. 문재인 정부 때 아예 별건수사를 금지하려고 “검사는 경찰 송치 사건은 동일한 범죄 사실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다가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로 최종 유턴했다. 나아가 김범수 센터장 1심의 재판장 당부대로, 경찰과 새로운 중수청이 구속 수사, 유죄 선고 등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불구속 수사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는 인권수사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별건·강압수사 논란을 겪는 특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건수사 금지는 수사·기소 분리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