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식의 시시각각] 카카오 김범수 1심 무죄가 남긴 것

입력
수정 2025.10.23. 오전 11:19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정효식 사회부장
지난 21일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 1심 선고는 무죄 결론보다 재판장이 던진 화두에 이목이 집중됐다. 양환승 서울남부지법 형사15부 부장판사가 “본건과 별다른 관련성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해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수사 주체가 어디가 되든 이제는 지양됐으면 한다”고 당부한 대목이다. 내년 10월부터 검찰이 없어지고 경찰(국수본 포함)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수사를, 공소청 검사가 기소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수사(기관)와 공소(기관)를 엄격히 분리하는 상황이라 특히 그렇다.

재판장 “별건수사가 진실 왜곡”
검찰 없어지면 별건도 사라질까
구속·유죄 성과주의와 결별해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 2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스1

124쪽 판결문에는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한 별건(바람픽쳐스 고가 인수 의혹)수사로 벌어진 일이 상세히 담겼다. 본건 SM엔터 주가 조작 수사는 2023년 2월 공개매수에 나섰다가 인수를 포기한 하이브의 금융감독원 진정에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15일 금감원 특별사법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1주일 뒤 돌연 바람픽쳐스를 압수수색한다. 2020년 카카오엔터가 400억원에 인수하기 전까지 바람픽쳐스 실질 경영자였던 이 전 부문장과 80% 지분을 보유한 부인인 배우 윤정희씨를 배임 혐의로 입건하면서다. 그는 두 차례 구속영장 청구와 배우자까지 연루된 별건수사에 극심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금감원과 검찰의 이전 여섯 차례 조사에선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가 별건 압수수색 이후부터 “시세조종을 공모했다”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 새로 도입된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신청해 주가조작 공범 기소도 면제받았다. 이에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에게 수사기관의 의도에 부합하는 취지의 진술을 함으로써 수사나 재판의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동기와 이유가 충분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믿지 않는다”고 배척했다.

이 전 부문장은 바람픽쳐스 수사로는 불구속기소가 됐지만 같은 재판부로부터 지난달 30일 1심 무죄를 받았다. “바람픽쳐스는 인지도가 높은 김은희 작가와 집필 계약을 체결했고, 스튜디오드래곤과 거액의 드라마 계약까지 체결한 가치 있는 회사”이고 “설령 수치상 가치와 인수 가격의 차가 크더라도 카카오엔터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다.

검찰청은 내년 10월부터 기소 전담의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 전담의 중대범죄수사청 등 2개 기관으로 재편된다. 뉴시스
‘털면 다 나온다’는 식의 별건수사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검찰 77년의 공과 가운데 최대 성공 사례로 꼽히는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도 대검찰청 중수부의 기업인들에 대한 비자금(횡령·배임) 별건 압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2008년 박연차 전 태광산업 회장 탈세 혐의 고발에서 비롯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는 현 여권의 정치보복 수사란 저항과 함께 검찰개혁론에 불을 지폈고, 2026년 검찰 폐지 대못의 발단이 됐다. 대장동 수사에서 시작해 성남FC 불법 후원금, 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으로 추가 기소된 이재명 대통령이 “내가 검찰의 최대 피해자”라고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문제는 검찰만 없어지면 먼지떨이식 별건수사가 사라질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별건수사와 여죄수사의 경계가 모호하다. 문재인 정부 때 아예 별건수사를 금지하려고 “검사는 경찰 송치 사건은 동일한 범죄 사실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다가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로 최종 유턴했다. 나아가 김범수 센터장 1심의 재판장 당부대로, 경찰과 새로운 중수청이 구속 수사, 유죄 선고 등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불구속 수사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는 인권수사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별건·강압수사 논란을 겪는 특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건수사 금지는 수사·기소 분리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