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동호회 '조선추노꾼 Wild-K'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버랜딩 대축제 in 고창' 관련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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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서 ‘오버랜딩’ 행사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 기구)가 인정한 ‘세계유산의 보고’인 전북 고창이 생태계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고창군이 고인돌·갯벌 등 세계유산 가치를 알리는 축제를 하면서 인근 해변에서 100대 이상 자동차가 질주하는 행사를 열면서다.
19일 고창군에 따르면 고창에서 지난 2일 개막한 ‘2025 세계유산축전 고창 고인돌·갯벌’은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이런 가운데 고창군은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5000만원을 들여 오프로드(off road, 특수화된 자동차로 포장되는 않은 길을 달림) 동호회인 ‘조선추노꾼 Wild-K’와 손잡고 17~19일 동호해수욕장 등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변 일대에서 ‘오버랜딩 대축제 in 고창’을 진행했다. 사륜구동 자동차와 픽업트럭 150여대가 해안가 모래사장을 달리고 야영하는 행사다. 오버랜딩(Overlanding)은 주로 사륜구동 자동차를 이용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자연을 즐기고 캠핑하는 여행을 말한다.
지난 2일 고창군 고인돌공원 특설무대에서 열린 '2025 세계유산축전 고창 고인돌·갯벌' 개막식에서 심덕섭 고창군수 등 관계자들이 개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고창군
오프로드 동호회 '조선추노꾼 Wild-K'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버랜딩 대축제 in 고창' 관련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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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세계유산 관리 원칙 위반”
이에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명사십리 해안은 행정적으로 세계자연유산 구역 밖이지만, 고창갯벌과 지질·생태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권역”이라며 “(자동차 150여대가 달리는 것은) 모래 유실 등 고창갯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자 ‘완충 구역과 주변 지역 활동이 유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리 핵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행사 중단을 촉구했다. 유네스코 관리 지침은 유산의 완전성·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유산 구역뿐 아니라 그 주변 환경과 인접 지역에서 발생하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유산을 보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단체에 따르면 고창 명사십리는 국내 해안에선 보기 드문 직선형 해안이자 모래 특성과 갯벌 특성을 모두 가진 복합 해안으로 고창갯벌의 ‘셰니어(Chenier, 해안 따라 모래나 조개류 등이 쌓여 만들어진 언덕)’와 함께 지형 변화와 퇴적 환경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도요새·물떼새의 중간 기착지이자 멸종 위기종 조류가 서식한다고 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명사십리 해안가를 세계자연유산 구역으로 확대 지정해 연안 생태 복원과 생물 다양성 증진을 통한 어민 소득 확대, 빼어난 해안 경관과 갯벌에 기반한 휴양과 체험 중심의 지속 가능한 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과 인접한 오버랜딩 행사 장소.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2021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갯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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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해양생태계 보호 지침 준수”
그러나 고창군은 “오버랜딩 행사는 단순한 자동차 행사가 아니라 자연환경과 명사십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상생형 축제”라며 행사를 강행했다. 고창군은 자료를 내고 “군은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8.5㎞에 걸쳐 펼쳐진 모래 해안을 품은 명사십리를 중심으로 관광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해양수산부의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공모 사업에도 도전 중”이라며 “오버랜딩 행사는 명사십리 관광개발 사업의 사전 단계이자 시범적 절차로서 해수부도 지역 해양관광 활성화의 일환으로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행사 추진에 앞서 군산지방해양수산청으로부터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정식으로 얻었으며, 해양생태계 보호 지침을 받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행사 기간 설치된 모든 구조물은 종료 즉시 철거해 원상 복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창군은 행사 장소 인근 상하면사무소와 장호어촌계엔 사전에 주민 공청회를 통해 행사 취지·내용과 안전 관리 계획 등을 안내하며 어업 활동이나 주민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고 협조를 구했다.
고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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