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생 고문 사망 사건 이후 현지 코리안 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 설치를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뒷북 대응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8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신고가 330건이나 접수된 가운데 온라인에선 여전히 “월 수천만원 보장” 등을 미끼로 한 구인 광고 등 한국인 유인 시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투자사기 등 국제 범죄 조직 인력 모집책들은 미국·일본·동남아 한인 사이트는 물론 국내 취업 사이트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동남아 지사 정규직을 모집한다”며 버젓이 구인 광고를 했다. 이날 한 대학생 취업 사이트엔 “간절하신 분, 수입이 없어 힘드신 분 전부 환영입니다”라며 “오셔서 돈 벌 생각만 하세요”라고 유혹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날 한 모집책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우리 위치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이라는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모집책 A씨에게 급여 수준을 물어보니 “기본급이 월 2000달러(약 286만원)고, 평균 7000~8000달러(약 999만~1142만원)씩 벌어간다”며 “숙식이 제공되고 2인 1실 기숙사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같은 시아누크빌에 있다는 다른 브로커 B씨는 ‘보이스피싱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투자사기니깐 그런 쪽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그는 “이곳은 4~5년 정도 유지된 오래된 회사”라며 “(납치·감금 등) 문제가 생기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고도 했다. 그는 한국인 납치·감금·폭행 사건이 급증하는 데 대해선 “일부 거지 같은 회사들의 얘기”라며 “우리는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태국에 있다는 모집책 C씨도 “우리는 도심에 있어 안전하다”며 “검찰을 사칭해 전화하는 업무고, 경험은 필요 없고 돈 욕심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보이스피싱 업무 등을 알선한다는 브로커 D씨는 “우리가 한국 사람을 소개하는 일을 한 지 15년째”라며 “요즘은 오히려 구인이 잘 안되는 편인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캄보디아는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경찰 간 협조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외교부 등 관계 당국과 협조해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캄보디아 문제의 심각성을 경시해 대응이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외교부는 “온라인 스캠인 줄 알면서 가족 몰래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사례가 많다”며 “구출된 후 다시 캄보디아에 입국해 온라인 스캠 센터로 복귀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한 바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일찍부터 캄보디아와 자국민 송환을 위해 공조에 나섰다. 일본은 지난 8월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모집돼 전화사기를 벌인 일본인 29명을 송환하기 위해 수사관 80명을 파견했다. 2022년 이미 주(駐)캄보디아 일본대사관이 “취업 알선을 빙자해 불법행위와 강제노동에 종사하도록 하는 감금 사건을 주의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수사력을 파견하기 위해선 캄보디아와 기본적인 협력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며 “캄보디아에 지원책 등을 제시하면서 인력 파견에 대한 협조를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캄보디아 경찰이 범죄 조직을 소탕할 능력이 충분하다면 외교적 노력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한국 경찰을 적극적으로 파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충남 지역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숨진 대학생 박씨가 대학 선배인 대포통장 모집책 홍모(20대)씨 소개로 캄보디아로 출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윗선을 추적하고 있다. 홍씨는 박씨 사망 이후 지난달 구속기소돼 다음 달 13일 첫 재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