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은 역(逆)의 상관관계를 지닌다. 최근 이 같은 공식이 깨졌다. 대표 위험자산인 주식과 비트코인은 물론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기현상이 펼쳐진다. ‘에브리씽 랠리’다. 시장에서는 이번 에브리씽 랠리 배경을 탈(脫)화폐 거래로 규정한다.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자 다른 투자 대상으로 유동성이 몰린다는 설명이다. 다만 에브리씽 랠리 지속 여부를 두고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당분간 랠리가 계속될 것이란 낙관론과 일시적 멈춤 혹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강하게 부딪힌다.
금리 인하·달러 약세·유가 안정
에브리씽 랠리 지속 가능성을 점치는 핵심 근거는 자산 시장 전반에 형성되고 있는 우호적인 환경이다. 박상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조 ② 4년래 최저 수준의 달러화 지수 ③ 완만한 유가 흐름이 자산 시장 전반에 우호적인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며 “3저(低) 환경이 자산 시장 랠리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건 금리 인하다. 금리 인하는 자산 시장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직접적으로 낮춰 시장에 유동성(현금)을 공급하고 투자 심리를 개선한다. 에브리씽 랠리의 필수 요건이라 볼 수 있다. 금융권은 미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10월 6일 기준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 10곳 중 9곳은 연준이 올해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발언도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불을 붙였다. 제롬 파월 의장은 10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콘퍼런스 공개 연설에서 고용 시장 약화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이어지는데도 고용 시장 약화를 강조했다”며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고 풀이했다. AP통신도 “파월 의장은 급격한 고용 둔화가 미국 경제에 점점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며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두 번 더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금리 인하 시 에브리씽 랠리를 불러온 달러 약세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 → 달러 투자 매력 감소 → 달러 수요 감소 →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서다.
로이터통신은 외환 전략가 평가를 인용해 “향후 12개월 동안 달러가 약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월 14일 기준 98.9다. 최근 1년 중 최저 수준이다. 안정된 유가 흐름도 에브리씽 랠리에 긍정적으로 작용 중이다. 유가는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직결 요인이다. 통상 유가가 떨어지거나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면 인플레이션은 둔화한다. 자연스레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 요인이 줄어든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이 급증해 막대한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10월부터 2026년 6월까지 하루 평균 320만배럴 공급 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상현 애널리스트는 “일부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으나 OPEC+의 증산 추세 등은 유가 추가 하락 요인”이라며 “3저 현상은 연말로 갈수록 강화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비관론 신기루 같은 랠리
취약한 고리 ‘주식’…꼬리 위험 요인도
하지만 에브리씽 랠리를 두고 비관적 시선을 드러내는 이들도 상당수다. 미국 경제·투자 분석 플랫폼 오프닝 벨 데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브리씽 랠리는 신기루(the everything rally is a mirage next to the debasement trade)”라고 표현했다. 자산 시장의 펀더멘털은 에브리씽 랠리를 뒷받침할 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주식 시장을 취약 지점으로 보는 분위기다.
주식 시장 리스크로 꼽히는 건 인공지능(AI) 거품론이다. 거품론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과열된 주식 시장 밸류에이션이다. 10월 14일 기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2.7배다. 닷컴버블 붕괴 직전 형성됐던 25배에 근접한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한 회사의 주식이 1년에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보여준다. 선행 PER도 같은 논리다. 현재 주가를 12개월 뒤 주당순이익과 비교하는 형태다.
또 주요 빅테크의 매출 증가율 둔화도 거품론에 힘을 보탠다. 이익은 양호하지만 매출 증가율은 AI 열풍 초기보다 둔화했다. 2024년 40%를 웃돌던 매출 증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M7(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알파벳·애플·엔비디아·테슬라)의 2025년 3·4분기 매출액 증가율 추정치는 각각 전년 대비 14.5%, 13.6%다. 이를 근거로 에브리씽 랠리의 한 축인 주식 시장은 언제든 무너질 만큼 위태로운 상태라는 게 비관론 진영의 주장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을 토대로 자산 시장 전반의 횡보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 효율적 시장가설은 공개된 정보는 시장 가격에 반영돼 있다는 논리다. 낙관론 주장의 근거인 3저 환경이 선반영됐다는 의미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선반영 구조의 가장 큰 리스크는 향후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벌어졌을 때 강한 조정 압력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산 시장 전반에 ‘FOMO(Fear Of Missing Out)’가 작용해 과도하게 낙관론이 쏟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FOMO는 남들이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데, 자신만 소외되고 뒤지는 것처럼 느끼고 불안해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를 드러내는 시장 사례도 여럿이다. 최근 옵션 시장에서는 콜옵션 거래가 과도하게 늘며 위험 선호 심리가 극단에 달한 상태다. 콜옵션은 일정 기간 안에 특정 자산을 지정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다. 지금보다 더 오를 것에 베팅하는 구조다. 또 신용 스프레드도 좁혀지고 있다. 신용 스프레드는 국채(안전자산)와 회사채(위험자산)의 금리 차이를 말한다. 신용 스프레드가 좁아졌다는 건 낙관이 팽배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꼬리 위험(tail risk)이 현실화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이란 게 비관론 진영의 분석이다. 꼬리 위험은 발생 확률은 낮지만 파괴력이 엄청난 리스크를 의미한다. 현시점의 꼬리 위험은 미·중 무역 전쟁이다. 미국은 지난 10월 14일부터 미국 항만을 찾는 중국 선박에 입항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의 조선·해운 사업을 견제하고 미국산 선박 건조를 장려한다는 목표 아래, 올 4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중국 운항 선박 입항료 정책’ 시행에 따른 조치다. 중국도 4월 예고된 미국의 조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미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휴전’을 점치지만 결과는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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