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항공·금융까지…거대한 투자 제국 만들었다 [케이스스터디]

박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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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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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자산 3조원 대명화학


100년 역사의 서울 광장시장. 지글거리는 빈대떡과 고소한 마약김밥 냄새 사이로, 이질적이면서도 ‘힙’한 풍경이 펼쳐진다. 시장 상인들이 ‘마뗑킴’ 로고가 선명한 티셔츠를 입고 분주히 움직이고, 그 옆 보라색 간판의 ‘오프뷰티’ 매장에서는 Z세대들이 K뷰티 제품을 ‘득템’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미 터를 잡은 ‘코닥어패럴’ 매장도 성업 중이다. 이 모든 브랜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손, 바로 ‘은둔의 M&A 승부사’ 권오일 회장이 이끄는 대명화학이다. 평범한 화학 회사라는 이름 뒤에 거대한 투자 제국을 건설한 권 회장은 이제 패션을 넘어 유통, 물류, 뷰티는 물론 초저가 비즈니스와 금융까지 넘보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광장시장에 나란히 오프라인 매장을 낸 대명화학 계열 주력 브랜드 코닥어패럴. (대명화학 제공)
대명화학 어떤 회사?

패션 M&A로 성장…금융·항공 진출

사명만 보면 평범한 화학소재 기업 같지만, 대명화학의 본질은 ‘투자 지주회사’다. 2024년 말 연결 기준 자산총액 3조2170억원 , 매출액 2조2765억원을 기록한 이 기업집단의 정점에는 회계사 출신의 권오일 회장이 있다. 그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졌지만, 다양한 M&A를 성공시키며 지금의 ‘대명화학 제국’을 건설했다.

대명화학 포트폴리오는 방대하다. 그룹 심장부인 패션 사업은 여러 개의 독립된 군단이 이끈다. 온라인 신진 브랜드를 발굴해 메가 브랜드로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하고하우스’ ‘코닥어패럴’과 ‘말본골프’ 등 라이선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하이라이트브랜즈’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열풍을 일으키며 급성장한 ‘레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 부문은 전국적인 아울렛 체인 ‘모다아울렛’과 온라인 패션 플랫폼 ‘패션플러스’가 맡고 있다. 여기에 물류 자회사 ‘로젠택배’와 항공사 ‘에어로케이’까지 품으며 패션·유통과 연계된 물류망을 구축했다.

광장시장을 필두로 전국구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는 대명화학 계열 오프뷰티(매경DB)
역시 광장시장에 오프라인 매장을 낸 대명화학 계열 마뗑킴(하고하우스 제공)
어떻게 급성장했나

인수 후 철저히 ‘맡긴다’

대명화학의 폭발적인 성장 방정식의 핵심에는 ‘볼트온(Bolt-on)’ M&A 전략이 있다. 이런 방식은 단순히 기업을 사들이는 것을 넘어, 기존 사업과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연이어 인수해 전체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 기법이다. 대명화학은 패션 브랜드를 시작으로 유통(모다아울렛), 물류(로젠택배)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즉 완결형 생태계를 구축했다. 패션 브랜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재고 부담은 자체 아울렛 네트워크를 통해 신속하게 해결하고, 급증하는 온라인 판매 물량은 내재화된 택배망을 통해 비용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권오일 회장의 투자 철학은 재무제표를 넘어 사업을 이끄는 ‘사람’의 잠재력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권 하이라이트브랜즈 대표는 “어떤 브랜드에 투자하느냐 못지않게 운영할 사람의 진정성과 능력을 핵심 가치로 본다”며 “식구가 되면 철저한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동행하는 것이 대명화학의 투자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패션 계열이다. 특히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하이라이트브랜즈’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코닥어패럴’의 성공으로 기반을 다진 하이라이트브랜즈는 2023년 매출 2217억원과 영업이익 388억원을 기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매출이 2487억원으로 약 12% 증가하며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필름 브랜드의 감성을 의류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코닥어패럴’, 트렌디한 골프웨어 시장을 개척한 ‘말본골프’, 이탈리아 헤리티지 스포츠 브랜드 ‘디아도라’의 성공적인 재론칭이 있었다.

다른 계열사 성장세도 가파르다. 브랜드 인큐베이터 ‘하고하우스’는 2024년 ‘마뗑킴’을 완전한 종속회사로 편입한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2023년 159억원이던 연결 매출은 2024년 1644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고, 영업손실(41억원)은 영업이익(387억원)으로 극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를 운영하는 ‘레이어’ 또한 2024년 매출 1506억원, 영업이익 33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75%, 86% 급성장했다.

최근 M&A로 본 新사업은

초저가 비즈니스·금융

권 회장의 M&A 레이더는 최근 ‘초저가 비즈니스’와 ‘금융’이라는 새로운 두 축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워크웨어계 유니클로’를 표방하는 ‘워크업’과 도심형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는 그의 새로운 관심사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다. ‘고릴라캠핑’ 신화를 쓴 방교환 대표가 이끄는 워크업은 7000원대 기능성 티셔츠 등 합리적인 가격에 디자인과 ‘핏’을 겸비한 작업복을 선보이며 ‘남자들의 다이소’로 불리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당일 현금 결제’ 원칙으로 글로벌 특화 공장들과 신뢰를 쌓아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아울러 가맹 보증금과 교육비를 없앤 파격적인 정책으로 1년여 만에 130개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하는 등 빠른 속도로 확장 중이다.

‘오프뷰티’는 ‘뷰티 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했다. 유통기한이 1~2년 넉넉하게 남았지만 패키지 리뉴얼 등의 이유로 발생한 ‘전략적 재고’가 무기다. 권 회장은 브랜드 본사로부터 직접 대량 매입해 최대 90%까지 할인 판매한다. 위탁이 아닌 직매입 구조이기에 가능한 가격 정책이다.

아누아, 조선미녀 등 인기 K뷰티 브랜드부터 샤넬 같은 명품까지 취급하며 광장시장 1호점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코스’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고를 소진할 창구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득템’의 즐거움을 주는 이 모델은 올해 안에 50개점까지 확대한다.

금융업도 새로운 사업 영역이다. 권 회장은 직접 보험판매대리점(GA) ‘어센틱금융그룹’의 사내이사로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2020년 출범 당시 47명의 소규모 조직이었던 어센틱금융그룹은 ‘지금융코리아’ ‘더금융서비스’ 등 연이은 M&A를 통해 현재 설계사 조직을 약 7800명으로 불렸다. 이는 업계 초대형 GA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약점은 없나

‘아픈 손가락’ 항공 사업

대명화학 제국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던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가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그룹 전체의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했다. K패션과 K뷰티의 글로벌 확대를 위한 물류망 확보라는 장기적인 포석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그룹 전체의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게 할 정도다.

에어로케이홀딩스의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833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4년째 지속되고 있다. 확실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다른 사업 부문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질 것인가, 아니면 막대한 재무적 부담을 감수하고 항공 사업 정상화에 나설지는 권 회장의 깊은 고심거리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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