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산 가격이 뛴다...‘에브리씽 랠리’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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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비트코인·주식 동반 사상 최고
버블 경고음…“닷컴 붕괴 전조 닮아”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전례 없는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모든 자산이 오르는 현상)’를 맞았다. 금값은 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고, 가상자산 대표 주자 비트코인은 어느새 12만달러 선을 넘어섰다. 미국 증시뿐 아니라 코스피지수도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동시에 급등하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월가에서는 “비관론자의 항복(surrender of the bears)”이란 진단까지 나온다.

글로벌 자산 시장에 ‘에브리씽 랠리’가 도래한 것은 세계 주요국이 확장 재정 정책을 펴면서 ‘돈풀기’에 나선 데다 화폐 가치 하락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투자자들이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란 화폐 가치의 질적 저하에 대비한 투자 전략이다. 높은 정부부채 부담에 중앙은행 신뢰까지 흔들리며 투자자들이 달러 등 기축통화를 대체할 다른 자산을 찾아 피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편에서는 실물 경기는 둔화하는데 자산 시장만 활황을 보이는 비정상적인 형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에브리씽 랠리의 주역으로 단연 금을 빼놓을 수 없다. 금은 전통적으로 ‘최후의 피난처’로 불리지만, 이번엔 에브리씽 랠리를 이끄는 핵심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14일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산하 금속선물거래소 코멕스(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장보다 3.3% 오른 온스당 413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금 선물은 장중 한때 4137.2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내년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도 유동성 기대감에 힘입어 지난 10월 7일 12만60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금값과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는 것은 투자자들이 달러 등 화폐 가치 하락에 대비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실물이나 대체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안전자산 수요가 아니라 ‘화폐 신뢰 붕괴’에 대한 헤지 수단 성격이 짙다는 의미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경기 둔화 우려 속에 통화 완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에는 유동성이 넘쳐난다.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고 현금 구매력이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리자, 투자자들이 ‘무엇이든 오르는 자산’으로 몰려든다는 분석이다. 위기 회피 수요과 유동성 랠리가 맞물린 이례적 현상이라는 의미다.

금융 시장 전반에 퍼진 ‘유동성 랠리’는 인공지능(AI) 붐과 결합해 주식 시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위기 회피 수요와 유동성 랠리 맞물려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특히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주는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일본 증시도 동반 상승했다. 엔저 효과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이 맞물리면서 일본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밀려들었다. 지난해 말 3만9894.54였던 닛케이225(닛케이지수)는 올 10월 9일 사상 처음으로 4만8000선을 돌파했다. 증시 랠리가 국경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는 모습이다.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랠리는 과거 버블처럼 단순 투기라기보다 구조적 자금 이동의 초기 국면일 수도 있다”며 “버블은 아직 젊다”고 강조했다.

코스피지수도 고공행진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400선에서 횡보했지만 올 초부터 급등하더니 10월 15일 3650선을 돌파했다. 이재명정부의 상법 개정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영향으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된 영향이 크다. 에브리씽 랠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에도 세계 주요국 정부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서면서 유동성이 주식, 금, 원유 등 대부분 자산 가격을 밀어올렸다. 2020년 4월부터 12월 말까지 S&P500은 53.8%, 나스닥은 72.7% 급등했다.

하지만 이번 에브리씽 랠리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저금리와 양적 완화가 맞물렸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고금리 시대를 거친 후 연준의 금리 인하가 방아쇠로 작용하면서 투자자들이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를 강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은 정체되고 실물 경기는 둔화하는데 자산 시장만 활황을 보이는 건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억만장자이자 ‘헤지펀드 거물’ 폴 튜더 존스는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현재 시장은 1999년 닷컴버블 직전의 모습과 닮았다”고 꼬집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술주가 급등하고 투기적 행태가 과열됐다는 분석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역시 “AI 산업은 지금 ‘산업형 버블’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투자가 실체를 만들기 전에 자본이 빨리 쏠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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