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이 로레알 출신 마케팅 전문가 이선주 대표(55)를 신임 사장으로 영입했다. LG그룹 정기 임원 인사가 나오기도 전 최고경영자(CEO)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자 업계에선 그간 실적 부진으로 속앓이하던 LG생활건강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LG생활건강은 지난 10월 1일자로 이선주 사장을 신임 CEO에 선임했다. 회사는 오는 11월 10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그를 대표이사로 공식 확정한다.
LG생건 ‘구원 투수’로 전격 등판
현 CEO인 이정애 사장은 3년 만에 용퇴했다. 그는 18년간 LG생활건강을 이끈 차석용 전 부회장 후임으로 2023년 CEO가 됐다. 당시 LG그룹 내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로 화제를 모았다. 이정애 사장은 ‘차석용 매직’ 그늘에서 벗어나 LG생활건강 실적 반등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지만, 중국 시장 부진과 내수 둔화 속 실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 선임된 이선주 사장은 1970년생 ‘젊은 피’지만 국내외 화장품 업계에서 30년간 몸담으면서 다양한 브랜드를 키워낸 마케팅 전문가이자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정애 사장이 LG그룹 공채 출신의 첫 여성 CEO였다면 이선주 사장은 글로벌 경험을 갖춘 외부 출신 첫 여성 CEO라 주목받는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로레알코리아 홍보·기업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을 맡았고 2006년 ‘입생로랑’ ‘키엘’ 브랜드 GM(총괄매니저)을 맡았다. 2013년에는 키엘 국제사업개발 수석부사장으로서 아시아, 북미, 유럽연합(EU) 등 52개국에서 사업을 이끌었다. 이때 키엘을 랑콤에 이어 로레알 럭셔리부문 내 2위 브랜드로 키워내고 매출 두 배 성장을 달성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후 2018년 이 사장은 엘앤피코스메틱 글로벌전략 총괄대표 겸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근무하며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 미국 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했다. 유니레버 자회사인 카버코리아 대표이사로 부임해서는 AHC 브랜드의 브랜드 정체성(BI·Brand Identity) 정립,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이선주 사장은 다국적 기업과 K뷰티 양쪽을 경험한 이력 덕분에 LG생활건강 브랜드 육성과 글로벌 시장 확장에 강점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인사 배경에 “글로벌 화장품 기업에서 쌓은 브랜드 마케팅과 사업 경험을 토대로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 생활용품·화장품 사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가 이례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매년 시행되는 정기 인사보다 두 달이나 앞당겨 CEO가 교체됐기 때문이다. LG그룹은 일반적으로 11월 말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이보다 약 두 달 가까이 앞당겨 CEO를 교체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LG생활건강이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이정애 사장은 취임 후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북미,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저변을 넓히는 한편,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특히 지난 2분기 LG생활건강 화장품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4% 감소한 6046억원을 기록했고, 16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LG생활건강이 화장품 사업에서 적자를 낸 것은 2004년 4분기 이후 20년 6개월 만이다. 최근 K뷰티가 해외 시장 전반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점과 비교하면 특히 아쉬운 수치다.
이런 상황에 이선주 신임 사장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북미 강화를 통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다. LG생활건강은 여전히 중국 시장과 면세 채널 매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 대외 변수에 영향을 적잖게 받는다. 지난해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은 45%에 달한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서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코스알엑스를 인수해 북미 시장 내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이 신임 사장은 고급 브랜드인 더후를 기반으로 체질을 강화하면서 서구권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더후를 기반으로 체질을 강화하면서도 일본·북미·동남아 등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지금도 LG생활건강은 아마존 등 온라인 채널에 빌리프, CNP, 더페이스샵 등 주요 브랜드를 입점해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중이다. 동시에 LG H&H USA를 통해 세포라, 얼타 등 대형 뷰티멀티숍에 주요 브랜드를 입점해 판매 중이다. 자회사 더에이본컴퍼니는 현지 방문 판매를 전담하고 있다.
색조 부문의 경쟁력 회복도 LG생활건강이 풀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색조 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LG생활건강은 2023년 인수한 브랜드 ‘힌스(hince)’ 인수를 계기로 기회를 마련했다. 이선주 사장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 K뷰티 양쪽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힌스를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는 동시에, 더마 브랜드와 색조 라인업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Z세대, MZ세대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회복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북미 시장에서는 아마존과 헬스앤뷰티(H&B) 채널 중심으로 매출이 늘었지만, 마케팅 비용과 고정비 증가 탓에 영업이익률이 하락했다. 이에 따라 고정비 효율화를 추진하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고급화해 수익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할 전망이다. 동시에 음료·생활용품 등 비핵심 사업에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유지해 균형 잡힌 성장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취임 초반 단기간에 수익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데다 온라인 부문 경쟁도 심화돼 녹록지 않다.
정한솔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LG생활건강이) 국내 온라인 시장과 H&B 채널 확대를 통해 수익성 개선을 도모하는 중이고, 북미·일본에서는 빌리프·CNP 등 전략 브랜드가 성장세를 이어가지만, 이 비중이 작아 전체 실적 기여도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원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안정적인 실적을 내는 음료 부문에서도 원자재 가격과 마케팅 비용이 상승한 탓에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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