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초강수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주택담보대출도 더욱 옥죄기로 했다. 6·27 대책, 9·7 대책에도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한 달여 만에 또다시 강도 높은 수요 억제책을 내놓았는데, 공급 방안 없이 집값이 안정세로 돌아설지는 미지수다.
과천, 분당 등 경기도 12곳도 함께 묶여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국무조정실·국세청은 지난 10월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규제지역 범위를 대폭 넓힌 점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가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인다. 경기도 12개 지역(과천시, 광명시, 성남시 분당·수정·중원구, 수원시 영통·장안·팔달구, 안양시 동안구, 용인시 수지구, 의왕시, 하남시)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현재는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용산구만 규제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규제지역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종전 70%에서 40%로 강화되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40%로 축소된다. 거액의 대출을 활용한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규제지역에선 다주택자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중과 등 각종 불이익도 받는다. 다주택자 취득세가 2주택은 8%, 3주택은 12%로 강화되고,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세도 2년 보유뿐 아니라 2년 거주 요건까지 채워야 비과세된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는 2주택이 기본세율(6~45%)에서 20%포인트, 3주택 이상은 30%포인트 중과된다. 다만 내년 5월까지 양도세 중과 조치가 유예된 상태다. 이외에도 재건축, 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고, 재건축 조합원당 주택 공급 수도 1주택으로 제한된다.
일례로 2주택자가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를 22억원에 매입할 경우 규제지역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취득세율 3%(9억원 이상 주택)가 적용돼 6600만원의 세금을 냈다. 지방교육세 등을 합하면 거래세는 7260만원이다. 하지만 마포구가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거래세 부담이 급증한다. 조정대상지역에서는 2주택자에 8% 세율이 적용돼 취득세는 1억7600만원으로 늘어난다. 지방교육세(880만원)까지 더하면 총거래세는 1억8480만원으로 껑충 뛴다.
이들 규제지역은 동시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도 묶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2년 실거주 의무가 부여돼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것)’가 막힌다. 집을 사기 전 구청에 허가를 받는 절차가 필요해 매수 과정이 복잡해진다.
특히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에 아파트뿐 아니라 ‘아파트와 혼합된 연립·다세대주택’을 포함시켰다. 같은 단지에서 아파트만 거래 제한을 받고, 용산 한남더힐처럼 연립주택은 규제에서 자유로웠던 걸 막기 위한 조치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은 10월 20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로,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연장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집값 15억 넘으면 주담대 한도 4억
25억원 초과시 2억원으로 급감
정부는 금융 규제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6·27 대출 규제를 통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했는데, 이번엔 한도를 더 낮췄다.
수도권·규제지역에서는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현행 6억원에서 4억원으로 낮아진다. 25억원 초과 주택은 대출 한도가 2억원으로 막힌다. 15억원 이하 주택은 지금과 같은 6억원 한도다.
15억원 초과 주택에 LTV 0%를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과거 정부에서 위헌 논란이 있던 점 등을 고려해 절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집값에 관계없이 6억원에서 4억원으로 낮추는 방안 역시 중저가 주택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의 자금 수요를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어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전세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된다. 그동안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임대인의 갭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집값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위는 1주택자 전세대출에만 DSR을 적용하고, 향후 시행 결과를 토대로 단계적인 확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차주별 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하는 ‘스트레스 금리’ 하한은 현행 1.5%에서 3%로 높인다.
앞서 지난 9월 발표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 상향(15→20%) 조치는 당초 예정된 시행 시기였던 내년 4월에서 앞당겨 내년 1월부터 조기 시행한다.
정부는 또 부동산 거래 관련 불법행위와 투기 수요 유입 근절에 나선다. 국토교통부는 허위로 신고가 거래 후 해제하는 수법의 가격 띄우기에 대한 기획조사와 의심 사례 수사 의뢰에 주력한다. 부동산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해 부동산 관련 범죄행위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한강벨트 등 30억원 이상 초고가 주택 취득 거래와 고가 아파트 증여 거래를 전수 검증한다. 금융위는 사업자 대출이 주택 구입으로 유용되는 실태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선다.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주관으로 경찰 841명을 부동산 범죄 특별단속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에는 부동산 세제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 영향, 과세 형평 등을 감안해 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병철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세제는 가급적 최후 수단이고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세제를 활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구체적인 개편 방안과 시기·순서는 시장 영향과 과세 형평 등을 감안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 지속되면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급 빠진 수요 억제, 부작용 불 보듯
10·15 대책 발표 직후 부동산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규제지역을 지정하면서 서울 외곽과 수도권에서는 내집마련 길이 막힐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선 부동산 공인중개 현장에서는 규제지역 지정 시행 전에 계약하기 위해 계약 날짜를 앞당기거나 막판 갭투자를 하려는 매수 문의가 빗발쳤다. 10월 16일부터 1주택 이상 보유자가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취득세가 8~12%로 늘어나 그 전에 계약을 앞당기려는 것이다.
마포구 공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10월 15일 밤 11시까지 계약서를 썼고, 당초 내일 계약하려던 매수자도 하루 앞당겨 계약했다”며 “지방에 거주해 바로 방문하기 어려운 매수자 중 전자 계약을 진행한 경우가 여럿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원구 상계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 동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대출에 큰 영향은 없지만,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 취득세가 8배로 늘어나게 돼 부랴부랴 매매 계약을 진행했다”고 귀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전문가들은 10·15 대책이 ‘초고강도 규제 시즌2’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6·27 대책을 통해 한 차례 대출 한도를 크게 줄였는데, 이번 대책도 그에 못잖게 강력하다는 평가다. 현행법상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규제를 망라해 대출·청약·세제 규제를 강화한 동시에 갭투자·가수요까지 차단하는 효과가 생겼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 전역과 경기도까지 확대한 조치는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라며 “집값이 크게 오른 서울 한강변 외에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와 경기 주요 지역까지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며 혹시 모를 ‘풍선효과’까지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서울 전역과 경기도 과천시, 광명시, 성남시 분당구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과열되던 아파트값 상승세와 매수세가 한동안 진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은 매수세가 주춤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번 대책으로 연봉이 1억원인 직장인 기준으로 대출 가능한 금액이 수억원 줄어들어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평균 가격은 15억574만원이다. 전에는 무주택자여도 소득만 높으면 10억원가량을 대출로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다 6·27 대책으로 이후 한도가 6억원으로 줄었는데, 이제는 15억원 조금 넘는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11억원 넘는 현금이 필요해졌다.
직장인 거주지로 인기가 많은 마포·성동 등에서 주택을 구매하려면 최소 6억~14억원 안팎의 자기 자본이 필요하다. 연봉이 5000만원인 직장인이 10억원 미만인 주택을 구매하려 해도 대출 가능한 금액이 약 3억5200만원에서 약 3억300만원으로 줄어든다. 스트레스 금리 상향에 따른 결과다.
당국은 스트레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가능액 감소폭이 최대 14.7%라고 밝혔다. 소득이 5000만원인 차주의 경우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30년 만기 4%짜리 대출을 받으면 변동형은 4300만원(-14.7%), 혼합형은 3700만원(-12.2%) 대출이 쪼그라든다. 소득이 1억원인 차주는 그 금액이 더 커서 변동형은 8600만원(-14.7%), 혼합형은 6700만원(-11.1%) 줄어든다. 현금이 부족한 중산층의 서울·수도권 진입이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사실상 ‘현금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마포·성동·광진구 등 한강벨트와 경기 남부지역은 실수요자가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한동안 숨 고르기 장세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서울·수도권 주택 시장 안정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지역을 광범위하게 확대하면서 한동안 매매 거래가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공급 확대가 아닌 수요 억제를 통해 거래를 누른 것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신규 매매 거래 가격이 크게 뛰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집값 상승세와 거래량, 가계부채 증가세는 잠시 억제했을 뿐 집값이 오를 요인은 여전히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서울·수도권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4만2684가구에서 내년 2만8984가구로 약 32% 급감할 전망이다. 경기(7만4741가구→6만7550가구), 인천(2만1414가구→1만5161가구)도 공급이 대폭 줄어든다. 공급이 줄면 그만큼 전세 물량이 부족해지고 전셋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전셋값 상승은 매매 가격을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된다. 전셋값이 오를수록 임차인은 계약갱신권을 적극 활용해 시장 출회 매물이 줄고, 아파트 위주로 전세 불안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 단기적 효과 유효’ 보고서에서 “10·15 대책이 서울·수도권 집값을 단기적으로 안정시킬 것”이라면서도 “인허가 감소 여파 등으로 서울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은 2026~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향후 수도권 집값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 역시 “과거 경험에서 보듯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대출을 제한하고 규제지역을 확대하면서 수요를 억누르는 접근법은 긴 흐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며 “최근 서울 한강벨트와 경기권 집값 상승은 9·7 공급 대책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도 반영된 만큼 공급 대책을 더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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