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한국판 헨리·니콜라 문제의 본질이 자산 양극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주택자가 근로소득을 아무리 쌓아봤자 서울 아파트 한 채 자산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열심히 돈을 벌어 계층 상승을 꿈꾸던 고소득 청년층의 희망은 높은 소득세 부담과 부의 대물림 현상으로 인해 갈수록 희미해지는 상황이다. 이른바 ‘금수저’를 보며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고소득 흙수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인은 근로소득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소득을 다각화하고 자산을 증식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개인 노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적절한 공적 시스템을 마련해 고소득 근로자의 자산 형성을 돕는 국가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와 개인 모두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국판 헨리·니콜라 문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생애주기별 포트폴리오 필요
한국판 헨리·니콜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높은 근로소득을 자산화하는 데 속도를 내는 게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생애 현금흐름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 복리 효과를 최대한 누릴 것을 조언한다. 고소득자는 안정적 현금흐름을 상당 기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경기 불황기에도 부침 없이 적립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특히, 빠른 자산 축적을 노려 단기 고위험 투자만을 좇는 건 장기 시계열로 봤을 땐 독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덱스 펀드·ETF 같은 시장 추종형 상품이 단기 차익 추구보다 안정적 수익을 제공한다는 게 여러 실증분석 결과다.
가령 미국 S&P500 인덱스를 20년 이상 보유했을 때 음(-)의 수익률을 기록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거의 없었다. 코스피·코스닥은 미국 대비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지만, 글로벌 ETF로 분산하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뛰어난 현금흐름을 지렛대로 적절한 수준의 레버리지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출 등 적절한 레버리지는 근로소득을 효율적으로 자산화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가 근로소득 상승을 훨씬 앞지르기 때문에 일정한 빚을 지더라도 미래 자산 증식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생애 첫 주택은 실수요 목적에 맞춰 장기 모기지를 적극 활용하되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소형 부동산이나 리츠(REITs) 같은 간접 투자도 포트폴리오 일부가 될 수 있다.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고소득 근로자는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집단이다. 세액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적극 활용해 세후 현금흐름을 늘려 이를 자산화하는 전략이 필수다. 연금저축, 개인퇴직연금(IRP), ISA 계좌가 대표적이다. 세제 혜택을 적극 활용해 절세와 장기 자산 축적을 동시에 노려야 한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무엇보다 2030 고소득 ‘헨리’들은 생애주기별 자산 배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30대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 공격적으로, 지출과 대출 상환이 집중되는 40대는 균형형으로, 50대 이후는 안정형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해야 한다.
가령 30대는 위험자산(주식·글로벌 ETF 등) 비중을 높이고 주택 마련을 위한 레버리지를 준비한다. 40대 땐 가계 지출(교육비·주택 대출 등)이 정점을 찍으므로 포트폴리오에서 현금흐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금흐름 창출 측면에서 배당주 투자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최근 분기 배당을 실시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분기별로 또박또박 배당을 받고 싶다면 기업별 배당 정책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50대부턴 연금, 채권, 안정형 부동산 등 현금흐름 자산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가계자산의 연간 목표수익률은 4~8% 수준의 복리 전략이 보편적”이라며 “목표수익률 설정 후 자산 포트폴리오에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적절히 나눠 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단, 가계자산 재배치와 부채 축소는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 계획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표 조정·세제 혜택 늘려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국판 헨리·니콜라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고소득 근로자가 자산 증식을 통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적 시스템 구축이 동반돼야 한다.
한국판 헨리·니콜라 문제의 본질로 꼽히는 자산 양극화는 개인 노력 부족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 70% 이상을 부담하지만, 정작 고소득자의 자산 형성 기회는 막혀 있는 기형적 구조다. 특히 세 부담이 큰데 국가로부터 별다른 혜택은 못 받는 고소득 근로자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고소득 계층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근로소득을 통한 자산 형성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 근로자는 우리 사회 중요한 인적 자원이자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때”라며 “특정 계층에 대한 특혜가 아닌 경제 기반을 튼튼하게 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기 위한 합리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영업자와 비교하면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 부담이 무겁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업소득자인 자영업자는 총수입에서 차량 구입이나 통신비 등 사업 관련 지출 비용을 제외한 소득이 과세 대상이다. 반면, 고소득 근로자는 급여가 전부 과세표준에 잡힌다. 공제 항목도 근로소득공제, 기본공제, 신용카드 공제, 연금저축 세액공제 등 한정적이다. 법적으로 허용된 테두리 안에서 경비 처리 자율성이 거의 없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 근로자는 고액 연봉을 받더라도 자영업자와 달리 세금 감면 혜택이 거의 없는 편”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세금 제도는 근로소득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러한 불균형이 고소득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고소득 무주택자의 ‘내집마련’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주택 청약 시 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 전형에서 소득 기준을 완화하거나 추첨제 비중을 확대하는 식이다. 고소득자 맞춤형 주택담보대출 상품 등 금융 지원도 고려할 만하다. 고소득자가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취·등록세 등 거래세를 낮추는 방법도 거론된다.
김태봉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을 높이는 대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며 “거래세가 낮아지면 고소득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이 보다 쉬워질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합리적인 균형 가격 형성으로 이어져 자산 양극화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미국은 고소득 근로자가 근로소득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세제 혜택을 통해 장기 자산 축적을 돕는 정책을 편다. 직장인 퇴직연금 ‘401K’와 개인은퇴계좌 ‘로스 IRA’가 대표적이다. 401K는 근로자가 소득 일부를 납입하면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기업 또한 일정 금액을 추가로 적립해준다. 인출 시점까지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가 이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스 IRA의 경우 납입 후 발생한 투자 수익에 인출 시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높은 세율 구간에서 절세 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지유진·박환희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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