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해보다 고용 상황이 어렵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한 청년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교회가 안식처이자 일터였다. 신학 교수라는 꿈을 안고 20대를 성경 공부에 바쳤다. 신학 박사 입학을 앞뒀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하나뿐인 아내의 암 진단 소식이었다. 고민 끝에 기술 공부를 결심했다. 목회자라는 외길을 걷다 30대를 앞두고 유턴한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문광식(31) 졸업생 이야기다. 문 씨는 짧은 학교 생활 동안 말 그대로 스스로를 갈아 넣어 포스코에 입사했다. 그를 만나 대기업 취업 도전기를 들었다.
문 씨는 모태신앙인이다. 신학 공부는 그의 사명이었다. 필리핀의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한국한영대 신학과에 편입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1, 2등은 늘 그의 몫이었다. 장학금도 놓치지 않았다. 한영대 졸업 후 서울신학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와 교회 근무를 병행했다. 신학 교수라는 꿈도 생겼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실무 능력을 키워 그 분야에서 인정도 받았다. 성취감과 긍지를 느꼈다.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장 목돈과 돌볼 여유가 필요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월급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매주 수, 금, 토, 일 교회에서 일했는데요. 새벽예배 전부터 출근해 저녁예배까지 드려야 비로소 퇴근했습니다. 대학원생이라 공부 시간도 빠듯했죠. 마지막 직장이 서초동의 유명 교회였는데요. 서초동에서 인천 집까지 출퇴근 시간만 편도로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아내가 무사히 수술도 하고. 예식도 치렀지만 회의감이 몰려왔다. “신혼 여행을 준비할 때 아내가 가고 싶다고 한 숙소를 비용 때문에 예약하지 못하게 한 맺혔나 봅니다. 설상가상 신혼 초인데도 아픈 아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데다, 수중에 돈이 없어서 그저 미안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어요. 그래도 공부와 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한 신학대 박사 과정에 합격했어요.”
대학원 등록금까지 냈지만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아내가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가족이 생긴 상황에서 도저히 공부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단 일부터 하기로 했어요. 평생을 신학 공부만 했던 터라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택배, 배달, 택시 중 무엇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죠. 문득 엉덩이는 무거우니, 기술을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한국폴리텍대학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집에서 가까운 남인천캠퍼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황한일 교수의 연락처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연계해준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2023년 3월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스마트표면처리과에 입학했다. 스마트표면처리과는 전국 유일한 표면처리 학위과정을 운영하는 학과다. 물체 표면의 부식 방지와 미관 개선을 위해 도금하는 법을 다룬다. 현장 실습을 중심으로 이론 수업을 병행해 짧은 시간에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또한 반도체, 철강, 가전,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 접목 가능하다.
서른이 다 된 나이로 새로운 영역을 공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학이 아닌 화학과 물리학은 생소했습니다. 막 스무살이 된 동기들과 어울리는 일도 낯설었죠. 신학 공부를 했을 때처럼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추가 연습을 하고, 전문 서적을 붙잡고 부족한 이론 공부를 했어요. 방학 때는 도금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무 능력을 쌓았죠.”
현실적인 문제로 전향을 결심한 만큼 목표를 높게 잡았다. “스마트표면처리과 졸업 후 표면처리 관련 회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국한하지 않고 표면처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탐색했습니다. 여러 산업을 고려한 끝에 철강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국내 최고 철강 기업인 포스코를 목표로 설정했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학년 2학기부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년 뿐이었습니다. 표면처리산업기사를 중심으로 취업에 발판이 될 자격증의 종류를 추렸습니다. 자격증별 전형 일정에 맞춰 계획표를 짠 뒤 주택청약통장을 깨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쉬는 날 없이 일과 공부만 했습니다. 신혼부부였지만 아내와 공휴일에 놀러간 기억이 없어요. 평일에는 방과 후 독서실에 가서 자정까지 공부하고, 주말엔 새벽 5시에 교회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눈부신 결실로 돌아왔다. 단 8개월 만에 7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표면처리산업기사, 금속재료산업기사, 산업안전산업기사, 금속재료시험기능사, 열처리기능사, 압연기능사, 제선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거머쥐었습니다. 특히 표면처리 자격증은 희소성이 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자격증보다 취득이 어려운 편이거든요. 잠재적 경쟁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격증을 따는데 성공해,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포스코 채용문이 열린 것이다. 서류부터 면접 전형까지 갈 길이 태산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내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취업이 절실했다.
단계별로 차곡차곡 접근했다. “10년간 공부했으니까 글 쓰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설교가 업이다 보니 누군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일도 힘들진 않았어요.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무엇일까 중점적으로 생각하며 자기소개서를 썼죠. 원서를 접수한 직후부터 인적성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합격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면접에서는 차별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스스로를 ‘이제는 목사라는 직업을 벗어나 철강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는 문광식입니다’라고 소개해 관심을 끌었죠. 다른 지원자보다 직무 관련 질문에 청산유수로 대답한 것도 플러스 요소였습니다.”
2024년 12월, 꿈에 그리던 포스코 전기강판부에 입사했다. “현재 전기 자동차 구동 모터에 필요한 철판을 공급하는 부서에서 공정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 및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합격 연락을 받은 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뿌듯했어요.”
대기업 입사 후 그토록 갈망했던 안정감을 원없이 누리고 있다. “인턴에서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된 지 3주 만에 아내가 출산했는데요. 약 40일간 출산 휴가를 보냈습니다. 아이가 커가는 모든 순간을 가족과 공유할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의 삶이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기술을 배운다고 했을 때 불안감을 표했던 부모님도, 지금은 누구보다 좋아하십니다.”
포스코 취업은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다. 자격증을 취득해 산업안전분야 전문가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천가지이지만, 해야 할 이유는 몇 가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돈이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도전을 꺼리고 하는데요. 이유를 막론하고 목표가 생겼다면 그냥 하세요. 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나이, 환경 등을 이유로 스스로를 가로막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 온전히 몰입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