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남자는 골라주는 옷만 입는다 했나, 멋쟁이 아저씨들 매료시킨 서비스

박유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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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취중잡담] 중년 남성 패션 앱 ‘애슬러’ 만든 김시화 대표
“아내에게 처음 칭찬받은 쇼핑.”

중년 남성 패션 애플리케이션(앱) ‘애슬러’에 올라온 실제 후기다. 패션 센스가 없어 옷을 사면 아내에게 늘 ‘이상하다’며 잔소리를 들었는데, 애슬러에서 산 옷은 아내가 칭찬했다는 뜻이다.

그간 패션 앱 영역은 20대 아니면 여성 위주였다. 특히 ‘중년’ 남성을 위한 마땅한 패션 앱이 없어 이들을 위한 온라인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질 않았다. 김시화 바인드(27) 대표는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고 패션에 관심 많은 세대가 중년으로 진입하면서 이들이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올 거라 봤다. 2022년 11월 중년 남성을 타깃으로 한 애슬러를 내놓은 이유다.

중년 남성 패션 앱으로 일인자 자리를 굳히는 중이다. 이용자의 96%가 남성이고, 40대 초중반 비율이 가장 높다. 2023년 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24년 58억원으로 스무 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 2분기 들어서 벌써 작년 매출액의 절반을 넘었다. 패션 업계에선 가을과 겨울이 성수기인 점을 고려했을 때, 올해 무난히 작년 매출액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에게 애슬러 창업기와 경쟁력을 듣기 위해 유선으로 만났다.

중년 남성을 위한 패션 앱 ‘애슬러’를 개발, 운영하는 스타트업 바인드의 김시화 대표. /더비비드


애슬러가 김 대표의 첫 창업 아이템은 아니다. 2020년 하반기 출시한 과외 선생과 학생을 연결하는 앱 ‘올타’가 시작이었다. 대전 둔산동 과외 일타강사였던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업이었다. 김 대표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 환경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과외 덕분에 용돈벌이가 쏠쏠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과외를 꽤 많이 했어요. 학생 성향과 학습 습관에 맞춰 과외 선생님을 연결하는 앱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결제일에 맞춰 앱에서 과외비를 결제하게 만들고, 알림장 기능도 넣고요.”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2년도 안 돼 사업을 접었다. 수익 구조가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수익원은 결제 수수료였어요. 그런데 대다수 학생이 맨 처음 과외 선생님을 찾을 때만 앱을 쓰고, 결제는 따로 했어요. 과외는 만날 때마다 결제하는 게 아니라, 한 달 단위로 결제하다 보니 앱 결제가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죠.”

비록 첫 창업은 실패였지만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게된 계기였다. “운동선수 영향으로 중학생 때까지 탁구 선수를 했는데요. 탁구채를 처음 잡았을 때 그 강렬함을 창업하고서 다시 느꼈습니다. 시작한 김에 꼭 한번은 성공하고 싶었어요. 올타를 계기로 내 경험이 아닌 시장이 원하는 수요를 파악해서 사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진정 시장에서 원하는 건 뭘까 분석했어요.”

첫 창업 아이템 ‘올타’를 개발했을 당시 팀원들과 업무하는 모습. /김시화 대표 제공

올타를 함께 만든 고교, 대학 동기와 다시 뭉쳤다. 2022년 4월 새 사업 아이템 발굴에 나섰다. 전 세계 1000여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는 비상장 기업)의 아이템과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사례 연구를 해보니 성공 공식이 보이더군요. ‘오프라인에서 성장하고 있거나 성숙한 시장인데 온라인으로는 전환되지 않은 서비스’였습니다. 이 공식을 한국 시장에 적용해 보니 중년 남성 의류 시장과 스포츠용품 시장이 보였어요. 중년 남성은 경제력이 높고 오프라인 시장에서 주 소비층인데, 정작 온라인에선 그들을 위한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2022년 11월 내놓은 애슬러는 ‘스포츠용품’에 특화된 앱이었다. 등산, 골프, 낚시 등을 취미로 삼는 중년 남성 타깃이었다. 그런데 얼마간 운영해 보니 이마저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스포츠용품의 경우, 고객을 앱으로 데려오는 ‘설득 비용’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스포츠용품은 마니아 성향이 강해서 아직 직접 보고 사야 해요. 또 궁극적으로 중년 남성을 위한 의류 앱을 생각했는데, 스포츠용품에서 의류로 확장하는 방향 역시 소비자에게 설득력이 부족하다 판단했습니다.”


중년 남성 의류 애플리케이션 ‘애슬러(Athler)’. /애슬러

중년 남성 의류 플랫폼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재조준하고 대면 인터뷰에 나섰다. 주변에 보이는 중년 남성은 모두 붙잡고 옷을 어디서 어떻게 사고, 왜 온라인 쇼핑을 안 하는지 물었다. 택시 기사까지 붙들었다. 그렇게 파악한 중년 남성의 옷 구매 특징은 이렇다.

“우선 쇼핑을 자주 안 합니다. 대신 한 번 쇼핑할 때 이것저것 한꺼번에 사죠. 객단가가 높다는 뜻입니다. 또 디자인보다는 원단과 품질을 중시해요. 한번 사서 오래 입어야 하니까요. 쇼핑하는 시간도 여성보다 짧아요. 여성이 앱에 진입해 결제까지 20~30분 걸린다면 남성은 10분 정도입니다. 무신사 등 기존 패션 앱이 있긴 하지만 20대를 겨냥한 스트릿 스타일이 많아서 중년 남성이 선호하지 않았어요.”

중년 남성 위주의 패션 브랜드조차 온라인 매출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역시 중년 남성 패션 앱을 내놓기 적절한 시기로 느껴졌다. “백화점, 아웃렛 위주로 유통 채널이 짜여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은 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사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의류 소비는 점점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었어요. 중년 남성만 소외된 상황이었습니다.”

2023년 애슬러 출시 초기 만났던 김시화 대표. /더비비드

2023년 7월 애슬러를 재단장했다. 모든 걸 중년 남성을 위한 의류에 초점을 맞췄다. “출시 초기 제품 가격과 브랜드명 등 핵심 정보만 나열했습니다. 글자 크기도 큼직하게 키웠고요. 패션 앱이지만 세련됨보다는 ‘편리함’과 ‘단순함’이 제1조건이었어요. 지금 초기보다 글자 크기가 40% 줄어든 상태인데도 다른 앱보다 글자 크기가 큽니다. 앱 진입부터 결제까지 모든 접근이 직관적이게 설계했습니다.”

출시할 때부터 추천 제품을 모아 보여주는 ‘기획전’에 신경 썼다. “중년 남성은 의류 쇼핑에서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가급적 가격 비교나 교환·반품을 안 하는데, 그러려면 소비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쇼핑에 시간을 많이 들이진 않고요. 그래서 한 번 맘에 드는 옷은 색깔별로 삽니다. 그렇다 보니 옷 구매 자체를 아내나 오프라인 매장 직원에게 의존하는 분들이 대다수였어요. 옷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기획전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입니다.”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250만명을 넘는다. 250만명이 꾸준히 애슬러 앱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주요 수익원은 다른 쇼핑 앱이 그렇듯 결제 수수료다. 애슬러에 600개가 넘는 브랜드가 입점했다. 올해 안에 1000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쇼핑 앱에선 월 거래액 수치가 중요한데요. 투자사 요청으로 자세한 수치는 비공개이지만 올해 벌써 재작년 대비 64배 올랐어요.”


(왼쪽부터) 김진수, 김태영 공동창업자(코파운더), 김시화 CEO. /김시화 대표 제공

올해 안에 중년 남성을 위한 패션 앱 일인자로서 시장을 확실히 선점하는 것이 목표다. 후발주자가 나오기 쉬운 서비스이지만, 김 대표는 이 시장 선구자로서 자신 있다. “저희 사업 본질은 ‘유통’이기에 가격을 고민하지 않고선 성장이 어렵습니다. 판매자라면 우리 앱에서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걸 강조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요. 또 다른 고객인 의류 브랜드와 긴밀한 관계도 저희 장점입니다. 오프라인 유통 위주였던 브랜드사에선 저희를 통해 새로운 매출 창구를 만들었어요. 관계가 많이 깊어졌고 이걸 잘 유지해 나가야겠죠.”

옷을 고르기 어려워하는 중년 남성을 위한 여러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챗봇 추천’이 그중 하나다. “제품 추천을 원하는 고객 문의가 많아요. 저희 앱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의를 샀는데 여기에는 어떤 하의가 어울리냐’, ‘낮에는 미팅이 있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데 두 상황에 모두 맞는 옷은 없냐’ 같은 식입니다. 실제 이런 문의를 바탕으로 기획전을 만들고 있는데요. 챗봇에 문의하면 제품을 추천해 드리고 있어요. 챗봇 서비스는 정식 도입은 아니고, 테스트 중입니다.”

옷 스타일링 추천 봇. 현재 테스트 중이다. /애슬러 캡처

한 발 나아간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추천 제품과 스타일링이 담긴 콘텐츠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선 아직 중년 남성을 위한 코디나 제품 추천이 없어요. 옷 쇼핑을 아내나 오프라인 매장 매니저 의존하는 중년 남성에겐 누구보다 필요한데도 말이죠. 촬영을 위한 중년 모델을 섭외 중이고, 빠르면 7월 말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밖에 브랜드와 협업해 애슬러 앱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단독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벌써 직원이 28명으로 늘었다. 그는 창업자의 요건으로 ‘융통성’을 꼽았다. “두 번의 피벗(사업 전환)을 경험하기도 했고, 스타트업은 특히 계획대로 안 흘러가는 경우가 너무 많더라고요. 계획도 중요하지만, 특히 대표라면 이렇게 시시각각 발생하는 문제,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빨리 정신 차리고 다음 전략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안 된다고 스트레스받고만 있을 여유가 없어요. 그렇다고 중심 없이 흔들리는 건 아니고, 당면 과제에 최선을 다하되 언제나 재빨리 방향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애슬러도 앞으로 계속해서 바뀔 거고, 그게 성장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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