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법무부에 “나를 부당수사, 돈 내놔라”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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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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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업 이어 정부까지 타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자기를 부당 수사했다는 이유로 현재 자신이 지휘하는 법무부에 2억3000만달러(약 3291억원)의 보상금을 요구해 ‘셀프 배상’ 논란이 일고 있다. 2기 집권 이후 언론사와 소셜미디어 기업들에서 수백억원대 합의금을 받아낸 데 이어, 이제는 정부 기관 상대로도 돈을 요구한 것이다. 미 언론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이해 충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진보 성향 시민 단체 피플포더아메리칸웨이는 트럼프를 ‘최고 갈취자(Extortionist-in-chief)’라고 했다.

트럼프는 21일 백악관에서 “법무부는 나에게 돈을 많이 줘야 한다”며 “나라가 나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겨냥한 2016년 대선 러시아 공모 의혹 수사와 2022년 기밀 문서 보관 혐의에 대한 마러라고 자택 압수 수색 등이 불법이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래픽=박상훈

문제는 법무부에서 이 청구를 심사할 인사들이 트럼프의 변호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토드 블랜치 법무부 차관은 트럼프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 때 변호를 맡았고, 스탠리 우드워드 주니어 민사 담당 차관보 역시 트럼프 기밀 문서 사건의 공동 피고인들을 변호했다. MSNBC는 “트럼프를 수사했던 바로 그 법무부에 트럼프가 거액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권과 행정권의 분리 원칙을 조롱하는 행위”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급에 대한 모든 결정은 내 책상을 거쳐야 할 것”이라며 “내가 나 자신에게 보상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지만, 만약 내가 정부에서 돈을 받는다면 자선 단체에 기부하거나 백악관의 새 연회장 건설 자금 등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돈 뜯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ABC와 CBS 등 주요 방송사에 편파·왜곡 보도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각각 1500만달러(약 214억원), 1600만달러(약 229억원)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소송이 끝까지 진행됐다면 트럼프가 승소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언론사 모회사들이 미디어 사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권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소셜미디어 기업들도 잇따라 무릎을 꿇었다. 2021년 1월 트럼프의 대선 패배로 촉발된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 사태 직후 트럼프의 계정을 정지했던 유튜브는 2450만달러(약 350억원), 메타는 2500만달러(약 357억원), X는 1000만달러(약 143억원)를 각각 지급하기로 트럼프와 합의했다. 트럼프가 재집권 이후 빅테크와 언론사에서 벌어들인 합의금만 8000만달러(약 1144억원)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지난달에는 뉴욕타임스(NYT)를 상대로 “수십 년간 나와 가족, 사업, ‘아메리카 퍼스트’ 운동에 대해 거짓을 퍼뜨려 왔다”며 150억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트럼프 개인이 아닌 행정부 차원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학내 반(反)유대주의 방관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 관행을 문제 삼아 연방 보조금·연구비를 중단하거나 동결한 뒤, 대학의 정책 시정을 전제로 거액 기여금을 받아냈다. 브라운대는 중단된 지원 재개를 조건으로 5000만달러(약 715억원)를 향후 10년간 연방 노동력 개발 프로그램에 기여하기로 했고, 컬럼비아대는 2억달러(약 2862억원) 납부에 합의했다. 하버드대는 최대 5억달러(약 7155억원) 지출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개인이 받는 돈은 아니지만, 정권 차원의 압박에 따른 사실상 헌납이라는 점에서 ‘갈취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3월에는 트럼프가 특정 환경 규제 완화를 담은 행정명령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에너지 업계 로비 단체와 관련 기업들에서 4000만달러(약 572억원) 규모의 ‘자선 기부’를 약속받은 사실이 공개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트럼프는 민주당 행정부에서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사 모나코가 임원으로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국가 안보 위협’ 발언을 하며 해임 요구를 공개적으로 했다. 직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백악관 주관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5000만달러(약 715억원)를 추가 출연했다.

에너지·석유 업계는 친트럼프 정책 유지 명목으로 올해 공화당 정치활동위원회(수퍼팩)에 1억달러(약 1431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방산 업계 역시 트럼프의 국방비 증액 약속에 화답하며 방산 주요 다섯 기업이 연합 로비 단체를 통해 백악관 정책 연구 기금에 1500만달러(약 214억원)를 출연했다. 미 언론들은 “정책이 기업 후원금과 교환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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