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총부리 못 겨눠 명령거부” 李대통령 여순사건 메시지 논란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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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세력의 무장 반란
사실상 ‘합당한 항명’ 평가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여순 사건’ 77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에서 사건을 촉발한 국방경비대(국군 전신) 14연대의 무장 반란에 대해 “부당한 명령에 맞선” 행위라며 사실상 합당한 항명(抗命)으로 평가했다.

여순 사건은 대한민국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14연대 내 일부 군인이 주동이 돼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여수·순천 일대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정부가 군을 파견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됐고, 2021년 제정된 ‘여순 사건 특별법’에 따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10월 정부는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를 처음으로 공식 확정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날 당시 반란을 주도한 14연대 군인들을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것으로 표현한 것은 논란이 됐다. 이 대통령은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000여 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언급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반(反)대한민국 폭동’이라는 여순 사건의 본질을 비켜 갔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정부가 펴낸 전쟁사, 회고록 등에 따르면, 14연대 내 남로당 세력은 ‘동족상잔 제주도 출동 반대’ 등을 내세우며 무기고와 탄약고를 장악하고 부대 내 반란에 반대하는 장교·하사관 20여 명을 사살했다. 여수 시내로 진출한 후엔 경찰서를 공격하며 ‘미군 철퇴’ ‘인민공화국 수립 만세’ 등의 성명을 발표했고, 열차로 순천으로 이동해 포로로 잡힌 경찰, 지역 유지 등을 살해했다. 제주 투입에 반대한 항명으로만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여순 사건’ 77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엄중한 책임 의식을 갖고 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이어 여순 사건 특별법을 언급하며 “역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묵념하는 김민석 총리 (구례=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가 19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역사문화관에서 열린 여수·순천 10·19사건 제77주기 합동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2025.10.19 uwg806@yna.co.kr/2025-10-19 10:21:48/<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현직 대통령이 여순 사건에 대해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재임 기간 국회에서 여순 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추념식에 추모 화환은 보냈지만 공개 메시지를 내진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과거 (민주당) 당대표 때부터 여순 사건에 관심이 컸고 명예 회복과 보상을 강조해 왔다”면서 “최근 계속되고 있는 역사 논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등 야권 정치인들이 영화 ‘건국전쟁2′를 관람한 뒤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 등을 언급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건국전쟁2는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 등을 소재로 해방 정국에서의 좌우 이념 대립과 남로당 세력의 활동, 여순 사건의 군사 반란적 성격 등을 다뤘다. 여권에선 영화가 4·3 사건과 여순 사건 희생자들을 모욕했다며 비난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여순 사건 특별법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민주당이 주도해 제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여순 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돕는 내용이다. 하지만 특별법은 여순 사건을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규정해, 이 사건의 군사 반란적 성격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신고가 적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작년 12월 특별법 시행 기간을 최대 2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48년 10월 여순 사건 진압 후, 반란군 협조자를 가려내기 위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전문가 사이에선 이 대통령의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경 진압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것은 맞지만, ‘좌익 세력의 반정부 폭동’이라는 여순 사건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사학자인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당시 여수 주둔 14연대 내 남로당 전남도당원인 지창수 등 좌익 세력이 ‘인민군과 함께 행동하자’며 경찰서 등 관공서를 습격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전후 맥락 없는 발언으로 여순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을 희생자인 것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객관적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대한민국 5·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폭동이고, 그것을 진압하려고 하자 여수에 주둔한 부대 내 남로당 분자들이 일으킨 반란 사건이 여순 사건”이라며 “여순 사건의 주동자들을 공식적으로 옹호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 A씨는 “여순 사건의 주체가 4·3 사건 진압을 거부했다는 것은 명분일 뿐”이라며 “여순 사건은 14연대 좌익 세력이 여수와 순천 일대 남로당 세력과 연계해 ‘우익 분자’ 1200명을 죽인 분명한 반란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남 구례군 지리산 역사문화관에서 열린 여순 사건 합동 추념식에는 정부를 대표해 김민석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김 총리는 “여순의 비극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며 “정부는 진상조사기획단을 통해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했다.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직도 지리산 인근에 파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비극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여순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국군 전신) 14연대가 ‘제주 4·3 사건 진압 출동 명령’이 내려오자 무장 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14연대에 침투해 있던 남로당원들이 ‘동족 살상 반대’ ‘통일 정부 수립’을 내걸고 반란을 주도했다. 인근 지역의 좌익 세력이 호응하며 확대됐고,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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