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공명당 연립 정권 붕괴로 총리 선출에 위기를 맞았던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새로운 연립 정권을 수립해 우여곡절 끝에 총리에 오를 전망이다. 연립을 이탈한 공명당을 대신해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지난 26년간의 ‘자·공 연립’ 시대를 끝내고, ‘자·유(自維, 자민당·유신회) 연립’ 시대를 여는 것으로, 다카이치는 21일 총리 지명 선거 승리가 확정적이다.
19일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일 다카이치 총재와 요시무라 히로후미 일본유신회 대표는 연립 정권 합의 문서에 서명할 예정이다. 합의 문서에는 오사카 부(副)수도 지정, 중의원 의원수 10% 삭감 등 유신회가 요구한 12개 정책 과제의 공동 추진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일본은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각각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하며,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 결과를 따른다. 총리 결정권을 쥔 중의원에서 자민당(197석)과 일본유신회(35석)는 과반(233석)에 근접한 232석이기 때문에, 다카이치는 야당의 분열 속에서 무난히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다카이치는 10일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유신회 등 야 3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권 교체 가능성도 거론됐다. 그 사이 11~13일 사흘간 공식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던 다카이치는 극비로 유신회의 후지타 후미타케 공동대표를 만나고, 오사카에 있던 요시무라 대표와도 전화 회담해 유신회가 원하는 연립 조건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과 유신회의 막후 협상을 눈치채지 못한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은 유신회와 야권 총리 후보 단일화를 협상했다. 하지만 유신회가 자민당과 손을 잡으면서 야권 단일화는 무산됐다. 야권의 총리 후보로 떠올랐던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유튜브에 나와 유신회에 대해 “이중인격 같다” “야당 3자 협의는 뭐였나” “속이는 일은 그만하자” 등 배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다마키 대표는 곧 태도를 바꿔 “다마키 총리설은 사라졌지만,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정당과는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 했다. 국민민주당이 향후 같은 야당인 입헌민주당보다 정치 이념이 가까운 자민당과 협력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2012년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창당한 일본유신회는 자민당보다 오른쪽으로 평가되는 보수 야당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지 않으며 자위대 권한을 헌법상 명기할 것을 주장한다. 오사카시와 오사카부의 지방의회 최대 정당이며, 국회의원 의석 대부분이 간사이(関西)에 몰려 있다. 당명인 ‘유신(維新)’은 19세기에 막부 정치를 붕괴시킨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서 따왔다. 메이지유신처럼 구체제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다.
자·유 연립 정권은 내년에 ‘오사카 부수도’ 법안을 의원입법으로 통과시킬 방침이다. 중앙정부의 일부 기능을 서쪽 오사카로 분산, 도쿄·수도권 못지않은 행정·경제 지역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당초 유신회는 오사카를 ‘도쿄도(都)’와 같은 특별 행정구역으로 바꾸는 ‘오사카도’ 구상을 추진했지만 2015·2020년 주민 투표에서 두 차례 부결된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먼저 오사카를 부수도로 만든 다음, 실패했던 ‘오사카도’를 추진해 명실상부하게 도쿄도와 맞먹는 특별 지역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전망했다.
유신회가 밀어붙이고 있는 ‘의원 10% 정수 삭감’도 일본 정치판을 흔들 수 있다. 유신회는 이른바 ‘자신을 먼저 베는 개혁’에 자부심을 갖는 정당이다. 자신들이 최대 의석을 보유한 오사카에선 시·부의회 의원 정수를 축소하고, 세비와 특권을 없앤 선례가 있다. 의원 삭감은 비례대표 의원이 많은 일본공산당과 공명당에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유신회는 과거 충청권을 기반으로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비교되기도 한다.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중앙 정치 구도를 흔든다는 점이 유사하다. 자민련은 당시 공동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과 안보(대북 정책) 분야 이견으로 연정이 해체됐지만, 일본 자민당과 유신회는 안보 분야에서 거의 같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