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가 巨與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수단’ 필리버스터 제한도 검토
더불어민주당이 대법원 확정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다툴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사실상 현행 3심제를 4심제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민주당의 사법 개혁은 대법관 증원보다는 재판소원 제도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실 의지도 강하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이날 김어준씨 유튜브에 나가 “사법부가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 등에 이어 37년 동안 논란이었던 이른바 재판소원제 도입까지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뒤집을 수 있어 ‘4심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제도까지 내세워 사법부를 더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은 또 야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의 남발을 막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형식적 필리버스터 남발을 끊어내겠다”며 “빠르게 관련 법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166석의 거대 여당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수단까지 막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4박 5일간 이어진 여야 필리버스터 대결이 끝난 직후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무책임한 보여주기 쇼’로 일관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필리버스터)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 소모적 국회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국민께서 만족해하시는 생산적 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법안 대표 발의를 예고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표결 방해를 목적으로 무제한 토론을 허용하는 것이다. 다수당의 수적 우위를 막기 위해 소수당에 주어진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 권한이다. 1973년 유신 정권 때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39년 만에 부활했다. 필리버스터는 시작 후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다. 다수당 입장에선 하루에 법안 1건만 처리가 가능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 25일부터 이어진 필리버스터 끝에 정부조직법 개정안,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국회법 개정안,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4건의 법안을 4박 5일 만에 처리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현행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수 있는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찬성인데 이 부분을 더 강화하거나, 필리버스터 시간을 단축하는 것 등을 개정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도 예정에 없던 법안을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통과시키기도 했다.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기업에 무상으로 주는 온실가스 배출권 비율을 법으로 규제하는 개정안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기후 위기 특위 차원에서는 통과됐을지 모르나, 본회의 안건 상정을 위한 합의는 전혀 없었고, 합의 이전에 논의조차 없었다”며 “민주당도 반성하기를 바란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국회 운영은 역사에 남을 만한 편파적 심판”이라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법’ 개정안은 재석 178명 중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직전에 처리된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반발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여권 정당만 참여한 가운데 처리됐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당 사법개혁특위에서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는 백혜련 사법개혁 특위 위원장과 최근 관련 논의를 했으며 사실상 추진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출신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도 이날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서 “사법부가 제대로 자정 노력을 안 하면 우리 입법부는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특정한 재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그걸 헌재로 가져간다는 것”이라며 “헌재에서 그 판결에 대한 위헌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심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더라도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을 경우 헌재에서 다시 한번 따져볼 기회를 주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김 의원은 “지금 사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은 평등권이라든가 기존의 관행에 비춰봐서 엄청난 공무담임권 침해인 것 아니냐”면서 “사실 우리가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청문회를 통해서 나오라고 한 것은 기회를 준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이번 ‘재판소원’ 도입 배경이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선 직전 파기환송 결정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김 의원은 “사법부한테, 대법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 국민 앞에 설명을 하고 그것이 납득이 안 되면 사죄를 하고 그런 기회를 준 것”이라면서 “그런데 만약 묵묵부답하며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소원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로 가서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하거나 위헌 판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헌재가 완전히 (대법원) 우위에 서는 것으로, 그게 대법원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최근 한 강연에서 신속한 재판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자고 하면서 (사실상) 4심제를 하자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판소원이 활발한 독일에서도 인용률은 1~2%에 그친다”며 “한국 대법원이 법률심에 그치지 않고 사실 인정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시중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영구 무죄법’을 만드는 게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재판소원·필리버스터
재판소원: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제도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민주당은 여기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되면 헌재 결정에 따라 대법원 확정 판결이 취소될 수 있다. 법조계는 현행 3심제의 틀을 깬 4심제 도입으로 조희대 대법원을 압박하려는 차원으로 보고 있다.
필리버스터: 국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지연하는 행위. 국회법에 있는 ‘무제한 토론’이 대표적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3년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법 개정(국회선진화법)으로 재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