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별무성과 ‘공수처 5년’… 형사사법 개편은 이 모양 돼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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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동아일보 DB
출범 5년이 돼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공수처는 이 기간 동안 고작 6건 기소하는 데 그쳤고, 검찰에 8건 기소 요구를 했다. 직접 기소한 6건 중 2건은 무죄로 결론 났고, 유죄인 1건은 선고유예였다. 구속영장은 출범 이후 8건 청구했는데 발부된 건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에 대한 2건이 전부다. 이 기간 투입된 예산은 776억 원이었다. 2021년 권력형 비리 근절을 목표로 출범한 기관으로서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다.

일차적 실패 요인은 수사력 부족이다. 공수처 검사 정원 25명을 다 채운 적이 한 번도 없고 지난해엔 14명까지 줄어들면서 인력난에 시달렸다. 검사 임기(3년)가 짧아 신분은 불안정한데 업무는 과중해 수사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이 오지 않는 문제도 지적돼 왔다. 초대 김진욱 공수처장과 현 오동운 처장도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등 주요 사건에서 이렇다 할 수사 지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견제로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윤 전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의 연임안 결재를 끝까지 미루다 임기 만료 직전에야 재가했다. 당시 여당도 김 전 처장 후임에 친윤 후보를 내세우다 추천 절차가 지연돼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를 빚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공수처는 삼류들이 가는 곳”이라며 비하했다.

이처럼 공수처가 안팎으로 흔들린 데에는 입법 과정의 설계 부실도 작용했다. 2019년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강행 처리했다. 애초 논의 과정에서 검사 50명에 6년 임기로 하려다가 일단 법부터 통과시키자며 타협책으로 이를 절반으로 줄인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법 조항에도 구멍이 적지 않다. 대통령까지 수사할 수 있게 해놓고 수사 대상 범죄에 내란죄를 넣지 않아 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수사를 두고 법적 분쟁이 생길 빌미를 줬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형사사법 제도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을 없앤 뒤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법이 이미 통과됐고, 시행까진 불과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태다. 수사·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새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하려면 수사력 공백과 수사기관 간 권한 다툼 등 혼선을 막기 위한 촘촘한 대비가 필요하다. 공수처의 실패는 대의명분만 앞세운 허술한 제도 개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이보다 좋은 반면교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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