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자연법 거스르는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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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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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폐지, 허위사실공표 개정은
권력자를 입법의 최초 수혜자로 만드는 것
대법관 정원 늘려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건
자기가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겠다는 것
송평인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이 연내로 형법상 배임죄를 없애기로 했단다. 배임을 형사 처벌에서 제외해 손해배상이 가능한 민사상 불법행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일찍부터 그런 주장을 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

그 이유는 배임죄로 기소된 이재명 씨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그의 재판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중단됐지만 임기가 끝나면 법원이 유죄든 무죄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배임죄가 폐지되면 그는 면소가 돼 사실상 무죄가 된다. 그것은 로크가 ‘통치론’에서 언급한 대로 입법의 최초 수혜자가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

입법의 최초 수혜자가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가 됐던 근래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문재인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할 때 개정을 추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공인의 경우 검찰 출석 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이 사라진 것이다. 조 대표는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검찰에 출석했을 때 이 조치의 첫 수혜자가 돼 검찰에 비공개로 출석할 수 있었다.

민주당 정권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배임죄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그때부터 배임죄를 민사적 불법행위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했으면 모르되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배임죄를 써먹을 대로 다 써먹고 이제는 이 대통령이 대상이 되자 배임죄를 없애겠다는 것은 입법의 최초 수혜자를 따지기도 전에 후안무치한 짓이다.

이 대통령의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더 임기가 끝난 뒤 재판을 통해 무죄를 받으면 된다. 배임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 지가 수십 년이 됐지만 그대로 지내왔고 당장 배임죄를 폐지할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입법의 최초 수혜자가 권력자가 되지 않을 시점, 다시 말해 이 대통령의 재판이 끝난 뒤 폐지해도 늦지 않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대상에서 ‘행위’를 제외한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이미 법사위를 통과해 언제든지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는 상태로 있다. 후보자의 행위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이 전 세계에 한국에만 있다는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은 틀리다. 주요국에도 있다. ‘행위’가 제외되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환송한 이 대통령의 거짓말도 면소가 된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이 역시 입법의 최초 수혜자는 권력자가 된다.

거의 미친 듯한 민주당은 대법관 정원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표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대법관 수를 2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대법관 1명을 늘리면 재판연구관은 10명 정도 는다. 대법관 정원을 늘리는게 상책(上策)인지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 해에 4명씩 늘리면 법원이 점점 더 가분수 모양이 된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임기 중 12명의 신설 대법관과 9명의 기존 대법관을 임명해 대법원을 자기 편으로 채울 수 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법으로 사회계약론을 전개한다. 제1자연법은 ‘평화를 추구하라’, 제2자연법은 ‘평화를 얻기 위해 필요할 경우 자기의 자연권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다. 그 주장을 쭉 따라가다 보면 제17자연법이 나오는데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자기 사건에 자기가 재판관이 되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이 자신을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옭아맸다고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답게 더욱더 재판으로 무죄를 받는 당당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홉스는 제17자연법 앞에 친절하게 ‘재판의 쌍방 중 일방이 재판관이 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고 하더라도’라는 단서를 달면서까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자신이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로크의 유명한 저항권이 입법의 최초 수혜자가 권력자가 되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는 입법의 권력이 가장 큰 권력인 대신 입법의 목적은 권력자 자신이 아니라 주권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이 원칙을 무시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해 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로크나 홉스라면 현 사태를 사회계약이 깨지는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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