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각국이 의약품 값을 적정가보다 낮게 책정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국 무역법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해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의약품을 구매하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판매가를 그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 상무부는 올 4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제네릭 완제품, 비제네릭 의약품, 원료 의약품 등에 대한 가격 조사를 진행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르면 외국산 제품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긴급하게 수입 제한이나 고율 관세 부과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올 7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의약품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거나, 짓지 않고 있는 제약사에 대해 1년~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달 25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달 1일부터 수입 의약품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제약사들과의 협상을 고려해 관세 부과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압박이 이어지자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잇따라 대규모 대미 투자안과 일부 약값 인하 방침을 내놓았다. FT는 “이번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관세 철회와 무역협정 체결로 진정됐던 글로벌 무역질서에 다시 긴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국가별 약값 조사에 나서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3개국의 약값을 비교한 결과 미국의 약값은 한국의 3.9배에 달한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미국 정부가 약값이 낮은 나라들에 대해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약값을 올리도록 압박할 수 있지만 국내 의료 재정상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의약품에 관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무역조치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약품에 고관세가 부과되면 주요 대미 수출 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생산 기업 및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DMO) 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