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홍콩 출신 음악 프로듀서인 하워드는 2011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했을 당시 “저 사람, 나랑 똑같이 생겼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는 양복을 입고 김정은을 흉내 낸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고, 2주 만에 첫 해외 공연 제안을 받았다. 이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김정은 흉내 전문 배우(impersonator)’로 데뷔했다.
영국 ‘메트로’가 19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하워드는 “김정은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내 전화기에 불이 난다. 하지만 나는 그가 뭘 하길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일이 생긴다”며 “내 일에 대한 관심은 시사 이슈에 따라 오르내리지만, 이런 방식의 행동주의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풍자 퍼포먼스를 직접 기획해 세계 각국을 돌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원래부터 정치, 특히 북한 같은 독재 체제에 큰 관심을 가져온 그는 코미디를 결합해 ‘김정은 흉내 내기’를 새로운 직업이자 저항의 수단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우산 혁명(Umbrella Movement)’에 김정은 복장으로 참가했다가 자택이 급습당하고 체포됐다. 기소는 취하됐지만, 그는 신변의 안전을 위해 홍콩을 떠나야 했다.
그는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올림픽 개막식 등 전 세계 주요 행사에서 정치 풍자를 이어가다가 베트남에서는 추방당했고, 싱가포르에서는 구금됐다. 심지어 북한 요원에게 미행당하고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호주 시민권을 가진 그는 호주에 거처를 마련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가장 많은 공연 의뢰를 받은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에서 추방당한 뒤였다. 그는 “언론에 내 이름이 오르면 그게 일종의 방패가 된다. 홍콩 경찰이 집에 왔을 때도 ‘우리 당신 팬인데, 상관이 시켜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며 “홍콩에서의 삶을 포기해야 했고 딤섬이 그립지만, 호주 시민권자라는 특권이 있으니 그걸 이용해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워드는 “지금 세상은 두 명의 독재자가 사실상 나눠 다스리고 있다. 한쪽엔 트럼프, 다른 쪽엔 시진핑이 있다. 나머지는 그 사이에 낀 셈”이라며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TV를 켤 때마다 그의 헛소리를 보며 분노한다. 그 상황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했다.
그는 풍자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그냥 피켓 하나 들고 시위했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흉내를 내면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그걸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재자들은 조롱을 두려워한다. 많은 시위대가 분노로만 표현하지만, 웃음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조롱당하는 쪽은 체면을 잃고, 보는 사람은 두려움을 덜 느낀다. 풍자는 공포를 없애는 힘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나는 심지어 중국 정부 지지자들도 웃긴 적이 있다. 활동가라면 자기 편을 결집하는 것뿐 아니라, 독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풍자가 유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워드는 언젠가 진짜 김정은을 만난다면 할 말을 이미 정해뒀다며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를 지도자로 세워라. 내가 당신의 나라를 자유롭게 해주겠다’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