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문재인 실패 잊었나…이재명 ‘보유세 카드’ 통할까?

김정민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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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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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이기는 세금 없다”..20년째 실패한 보유세 강화
보유세 강화 주장 근거 둘 ‘응능부담’·‘매물 잠김’
구윤철 "보유세 강화, 납세자 부담 능력 맞는 공평과세"
응능부담 논리는 '고령 1주택 실수요 거주자'가 걸림돌
매물잠김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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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부동산 보유세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지난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처럼 재산세를 (평균) 1% 매긴다고 치면, 집값이 50억이면 1년에 5000만원씩 보유세를 내야 하는데, 연봉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간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보유세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 사례를 소개한 것 뿐”이라고 뒤늦게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기재부는 최근 부동산 세제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보유 과세의 형평성과 조세 정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진성준 의원이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10·15 대책에 보유세가 들어갔으면) 오히려 더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히는 등 여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이재명 정부가 보유세 인상 수순을 밟은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시장에서는 “보유세 인상은 지난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유세 인상은 단기 효과로 그치면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보유세 강화 카드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장을 이기는 세금 없다”..20년째 실패한 보유세

보유세 논쟁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는 ‘10·29 부동산 대책’을 통해 처음으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을 예고했다.

당시 정부는 투기 수요 억제를 목표로 고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했지만 시장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지금 사지 않으면 더 오른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 2003~2004년 서울 아파트값은 연평균 15~18%, 강남 3구는 20~30% 올랐다. 정책 신호는 강했지만 투기 수요 억제 효과는 미미했다.

2005년 종부세가 본격 시행되고 2006년 세율이 인상되자 시장은 일시적인 관망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유세는 시장 매물을 늘리지 못했고 오히려 공급 부족을 심화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 속에서 세 부담을 피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법인 명의 전환 등을 선택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06~2007년 2년간 37% 폭등했다.

보유세가 가격을 묶지 못하고 오히려 시장 왜곡만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문재인 정부 때도 반복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이후 종부세율 인상·공시가격 현실화·다주택자 중과 등 역대급 보유세 강화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도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전세가격 급등이 맞물리며 보유세 강화는 투기 억제보다 똘똘한 한 채 집중 현상을 키웠고, 강남·용산 등 핵심 입지 아파트는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새 전국 집값은 43%, 서울은 34% 상승했으며 2021년 주택 증여는 17만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보유세를 완화했지만 오히려 같은 시기 시장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보유세 완화 영향이 아닌, 금리 인상으로 대출 부담이 폭증하면서 가격 조정이 시작된 영향이란 분석이다. 부동산 가격의 핵심 변수는 세금이 아니라 ‘금리·공급·유동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사례로 꼽힌다.

보유세 인상 주장 근거 ‘응능부담’·‘매물 잠김’

이처럼 보유세 강화는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3~6개월내에 원상복귀하는 현상을 반복해 보여왔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에선 보유세 강화 군불때기가 한창이다.

보유세 인상 필요성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락인 이펙트’(Lock-in Effect·매물 잠김)‘와 ‘응능부담(應能負擔)’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보유세 강화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하는 조세 원칙인 ‘응능부담(應能負擔)’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보유세는 낮고 양도세는 높아 ‘락인 이펙트’가 심하다. 취득·보유·양도 단계에서의 부동산 세제를 전반적으로 어떤 정합성을 가지고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응능부담 원칙은 세금을 부과할 때 자산 규모, 소득 등 개인의 부담 능력에 비례해 과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현재 한국의 보유세가 자산 규모에 비해 낮게 책정되어 있어 고가 자산 보유자의 부담 능력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고가 부동산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자산 불평등 완화’와 ‘공평 과세’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고령 1주택 실거주자’들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종부세를 납부한 46만3906명 중 60세 이상이 24만1363명으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이들이 낸 종부세액은 6244억원으로 전체 세액(1조952억원)의 57%에 달한다.

1인당 종부세액은 평균 236만원이며 이중 60세 이상 평균 납부액은 259만원으로 60세 미만 203만원보다 56만원 많다. 은퇴 세대 자산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종부세 부담이 고령층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층은 은퇴 이후 연금이나 저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보유세 부담이 납세 능력을 넘어서기 십상이어서 ‘응능부담’ 논리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고령 1주택 실거주자들은 대부분 투기 목적 보유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종부세 도입 초기때와 같은 조세평등원칙 침해,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매물 잠김’은 부동산 소유자가 집을 팔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가 지나치게 높아 매도를 포기하고 주택을 계속 보유하려는 현상이다. 구 부총리는 보유세 강화·양도세(거래세) 완화를 동시에 추진, 보유 비용은 높이고, 매도시 세 부담은 낮춰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함으로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부동산 구조에서는 보유세 강화·거래세 완화 정책이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주택 보유 동기가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어서다. 한국에서 주택은 ‘실거주+자산증식’을 동시에 담당하는 대표 자산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총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약 76%에 달한다. 이런 구조에서 근본적인 공급 문제를 무시한 채 세제로 시장을 조정하려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은 구조적 공급 부족 상황이며, 거래 침체는 세제가 아닌 공급 불확실성과 금리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4~2025년 서울 입주 물량은 연평균 4만 가구 수준으로, 최근 10년 평균치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이같은 공급 부족 상황에서 세제 개편만으로 매물을 유도하는 것은 시장 수급 원리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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