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약달러’에도 패권 유지…고환율 뉴노멀
‘달러보험’ 분산투자…금, 포트폴리오 수비수 역할
달러화 뒤 노리는 위안화, 변화는 ‘잰걸음’
|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금과 주식, 코인 등 자산의 가치가 치솟고 있는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달러불패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달러를 역할을 대신할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는한 달러 패권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체 수단 없는 달러…환율 장기적으로 ‘레벨업’
오 단장은 지금의 에브리씽 랠리를 금융 시스템 전반에서 화폐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딩(Debasement Trading)’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는 “부채 문제로 인해 정부가 돈을 찍어 갚는 구조가 이어지면 종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화폐 가치 하락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 금이고, 이 과정에서 금값이 급등하며 다른 자산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의 글로벌 부채 확대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오 단장은 이같은 현상이 달러의 패권 붕괴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하고, 국제적 리더십을 일부 상실한다면 달러 패권은 점진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체할 통화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달러 패권 붕괴를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위안화나 유로화가 후보로 거론되지만 정책 신뢰나 유동성 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 단장은 가상자산인 ‘코인’도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오 단장은 “기축통화가 되려면 통화 안정성이 필수적”이라며 “달러 가치가 10%만 떨어져도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비트코인은 하루에도 그 정도 변동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달러 거래가 가능해진다”며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배경으로 오 단장은 원·달러 환율이 장기적으로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이 된 것처럼 앞으로는 점점 더 높은 환율이 뉴노멀로 자리를 잡게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오 단장은 “레고랜드 사태로 환율이 1450원을 바라봤을 때 사람들은 ‘곧 1200원대로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1400원이 일상화됐다”며 “사람들의 ‘정상 환율’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향후 5년을 보면 환율은 1250원으로 내려갈 확률보다 1550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며 “관세협상과 같은 단기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과거보다 높은 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이 같은 이유로 오 단장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달러를 제외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달러를 화폐 그 자체로 보유하거나 투자하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오 단장은 “달러를 현금 자체로 보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채권이든 주식이든 달러와 관련한 자산의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하라는 것”이라며 “요즘은 달러 보험에 투자를 많이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달러보험은 보험료와 보험금 모두 달러로 주고 받는 상품이다.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면 환차익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에서 달러보험의 연간 누적 판매액은 최초로 1조원을 돌파했다.
그는 “달러보험은 10년 유지 시 비과세가 가능하고, 연 5%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미국 국채 투자와 유사한 성격”이라며 “달러 자산은 장기적 분산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오 단장은 트럼프 시대의 키워드가 ‘변동성’임을 고려해 지금은 보다 긴 호흡의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단기적인 예측이 쉽지 않은 만큼 10년 후의 자산 가치를 고려하라는 얘기다.
오 단장은 “관세 협상 등 정치 이슈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트럼프 본인도 모를 것”이라며 “이런 시기에는 단기 예측보다 5년, 10년 후 자산 구성을 중심으로 긴 호흡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무섭게 치솟다가 급락한 금 역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오 단장은 “금은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필요한 자산으로, 금융위기나 코로나처럼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 시기가 오면 금은 언제든 급등할 수 있다”며 “따라서 단기 투자가 아니라 위기 대응용 ‘수비수 자산’으로 꾸준히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 단장은 달러 외의 주목할 통화로는 ‘위안화’를 손꼽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 최근 금융시장 개방과 자본 자유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완전한 대체까지는 멀지만 잰걸음 행보를 통해 달러 중심 체제에 서서히 도전할 가능성이 있고, 위안화 역할 확대는 글로벌 통화 흐름에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