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 확대 전망에 ‘엔화 매도’ 자극
엔 캐리 확대 유동성 증가·원화 약세 동조
“확장재정 가능성 낮아…원화엔 단기 변동성”[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금융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극우파 정치인이자 아베노믹스 계승을 공언한 그가 국정운영 책임자가 되면서 ‘엔저 회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엔화 약세가 심화하면 달러 강세 압력이 한층 높아지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 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정보 단말기 엠피닥터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은 장중 151.6엔까지 오르며 전날보다 0.5% 이상 상승했다. 달러 대비 엔화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의미다.
엔화 약세에 연동하며 원화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총리 선출 확정 이후인 오후 3시쯤 1428.6원까지 올랐다. 환율은 이날 개장 초 1420원 아래서 움직이다가 상승 폭을 급격히 확대한 것이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선 이유는 아베노믹스의 계승자로 불리는 다카이치가 신임 총리가 취임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을 속도를 늦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엔화 매도와 달러화 매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다카이치가 총리 체제에서 엔화 약세는 더 강해질 공산이 크다. 실제 아베 정권 2기를 시작한 2012년 12월 직전만 해도 80엔이었던 달러·엔 환율은 1년 만에 100엔까지 치솟은 바 있다.
엔저 흐름은 단기적으로 일본 수출에는 호재지만, 아시아 금융시장에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값싼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 확대로 국제 증시 유동성은 늘어날 수 있지만,원화가 엔화와 동조하며 약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다카이치 총리 선출로 정국 불안은 낮아지고 일본 금융시장은 엔화 약세, 주가 상승, 장기 국채 금리 수준도 현재보다는 높아질 것”이라며 “BOJ도 이달 29~30일 개최되는 10월 금정위를 통해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는 결정을 할 것으로 보여,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외환시장 변동성도 단기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노믹스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
다만, 다카이치 총리 취임에 따른 엔화 약세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원화에 미치는 영향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본의 확장재정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금리 여건이 부담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당시에는 일본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이었지만, 현재 10년물 금리는 1.5%, 30년물은 3.3%를 웃돈다. 확장재정이 현실화될 경우 국채금리 급등과 재정불안 우려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
BOJ의 정책 기조도 다카이치 내각과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 BOJ는 이미 추가 금리 인상과 양적완화 축소를 준비 중이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을 목표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협조했던 아베노믹스 시절과 달리, 지금은 물가 안정이 우선 과제가 된 셈이다.
외교적 제약도 크다. 미국 입장에서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의 관세 회피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묵인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총리가 완화 기조를 일정 부분 유지하겠지만, 그 강도는 아베노믹스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BOJ 간 통화정책 차별화를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는 엔화가 점진적 강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BOJ는 고물가 부담에 10월말 금리 인상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엔화 약세 역시 짧고 얕게 그칠 가능성이 높고, 원화도 일시적 영향을 받을 수 있겠으나 방향성보다는 단기 변동성 확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대 초반까지 떨어진 지금이 엔화 저가 매수의 기회”라며 “내년 하반기까지 달러·엔 환율 하락(엔화 강세)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뚜렷해지며 원·엔 환율이 1000원대로 재진입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