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싸며 버텨요”…고환율에 무너진 유학생·신혼부부

정윤지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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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1. 오후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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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장기화 우려에 체감 압박 커져
대학원 진학 포기하고 식비 줄이며 버티기도
한미 무역협상 등 불확실성 여전…“고환율 지속 전망”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당장 해외 신혼여행을 앞둔 신혼부부부터 유학생 등 외화 지출이 필수인 이들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당분간 고환율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이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8.6원 오른 1427.8원에 마감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극심한 변동성 속에 지난 13일 외환당국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구두 개입을 한 뒤 오름폭이 다소 좁혀졌지만 완전히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떨어질 줄 모르는 환율에 미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낸 학부모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한 사립대 공대에 딸을 유학보낸 양모(55)씨는 당시 세워둔 경제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1200원대였던 환율이 3년 만에 1420원선을 찍으면서다. 양씨는 학기가 시작하는 3개월마다 7만달러를 송금하는데 유학 초반에 비해 원화로 1500만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달 생활비로 보내던 100만원도 이제는 150만원이 필요해졌다. 양씨는 “제발 졸업만 해라. 그러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열악한 형편에 석박사까지 마치려 했던 양씨의 딸도 대학원 진학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학생들도 당장 생활비를 줄이며 버티고 있다. 미국의 한 주립대에 다니는 김현지(24)씨는 “평소 용돈 기준으로 환율 때문에 원화로 30만~40만원 손해를 본다”며 “한 달 생활비 중 일주일 치가 사라진 거라 먹는 걸 먼저 줄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친구들과 함께 식료품을 대량 구매해 이를 나누고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고 있다고 했다. 혹여 도시락이 없는 날에는 저렴한 패스트푸드나 시리얼로 끼니를 때운다.

유학뿐 아니라 미국 여행을 준비하던 이들도 고민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오는 12월 미국 서부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박모(29)씨는 꼼짝없이 고환율에 미국을 가게 됐다. 박씨는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큰일”이라며 “여름에 1400원이 안 될 때도 높은 편이라면서 예약했던 터라 더 오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환율 상황이 나은 영미권 다른 국가로 대안을 찾는 이들도 있다. 내년 2월 10일간 미국 여행을 앞둔 송지은(35)씨는 “지금 환율로 숙소를 결제하면 예상보다 50만원 정도 더 나가고 현지 각종 경비를 생각하면 백만원대로 차이가 뛸 것”이라며 “환율 때문에 동동거리기 보다는 여행지를 바꾸는 게 나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미국 여행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항공권 가격이 너무 올랐다’ ‘고환율 시대 국립공원 같은 가성비 여행지 추천’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때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끈 ‘아마존’ 등 미국발 직구도 환율 영향으로 시들해진 분위기다. 미국에서 아이폰이나 운동복 등을 자주 구매해 온 직장인 한모(31)씨는 “환율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사는 게 훨씬 저렴한 경우가 많다”며 “중국 업체들도 저렴하니 더이상 미국에서 직구는 안 하게 된다”고 했다.

이 같은 고환율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화 약세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던 한미 무역협상이 최종 타결을 앞두고 있지만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재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직 (한국 정부의) 대미투자 관련 세부사항이 결정된 바가 없어 현재 수준(1420~1430원)에서 한동안 등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과 중국의 관세 협상도 원화에 변동성으로 작용할 수 있어 2025년 초 고점이었던 1480원대까지 다시 테스트할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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